명상

기적

T1000.0 2020. 10. 1. 21:14

1.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의 목적 혹은 목표 개념을 생각해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럴 경우 2차 수준의 관점으로부터 제기되는 물음은 '목적의 목적은 무엇인가?' '목표의 목표는 무엇인가?' '왜 도대체 목적에 대한 생각이 도입되는가?' 등이 되겠지요.

제가 비행기를 타고 갈 때에 저는 늘 제 주변에 앉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신발 끈을 어떻게 묶었는지를 살펴봅니다. 비행기가 출발하면 그들은 신발을 벗었다가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그들은 다시 신발을 신습니다. 그들은 신발 끈을 구멍에 넣으면서 열손가락으로 기묘한 춤을 춥니다. 매듭을 만드는 거지요. 그들을 관찰해보면 그들 각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 다른 춤을 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매듭을 만드는데 모두들 서로 다른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입니다. 물리학자라면 손가락의 미분방정식을 적어 내려 갈 겁니다. 그리고 정말로 다양한 방정식들을 얻을 겁니다. 그래서 손가락 춤의 현상을 설명 불가능한 것으로 여길 겁니다. 그렇지만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손가락의 춤사위는 정말 간단하게 설명됩니다. 손가락의 움직임은 매듭을 묶어 신발을 조이는데 사용된다고 말이지요. 목적에 대한 생각은 (2차 수준의 관점에서 보면) 이 경우 엄청난 단순화와 설명의 명료함을 만들어 내지요. 이게 목적의 목적입니다. (발명품 187)

2.

제게는 그러한 신비적 체험들이 결코 신비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항상 그런 체험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에게도 일상적인 그런 체험에 주의를 기울이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우리가 우리 삶에서 보지 못하고 끊임없이 지나쳐 버리는, 중단 없이 진행되는 세상의 수수께끼와 기적을 지각하기 위해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소위 신비가에게는 일상의 삶이 놀라운 것도 아니고 기적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신비가는 존재의 놀라움을 뭔가 특별한 것으로 평가하기 위해서 좀 물러서 있어야 합니다. 또 '세상에, 나는 지금 신비적 체험을 했어! 지금 나는 어떤 현상을 봤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일상을 별다른 놀라움으로 보지 않는 그런 신비가는 물러서야 합니다. 제게는, 세상이 늘 매순간 수많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사람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 (발명품 262)

T.

물리학자에게는 손가락 춤의 현상이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목적론적인 관점에선 일상에 불과할 것이다. "제게는, 세상이 늘 매순간 수많은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사람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