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의 불가능]
폐쇄적이고, 구조적으로 결정된 체계들인 우리가 조화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체계들이 구조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하나의 외적 작용체는 체계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변화는 섭동하는 작용체에 의해 유발되지만 섭동 체계의 구조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합니다. (함으로 138)
T.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은 불가능하다. 남에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
남을 제도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그것은 불가능하니) "남을 제도하되 실로 제도를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1.
결국은 모두 심리적 위안의 문제입니다. 스님이라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그 결정에 위안이 좀 되는 겁니다. 저울대가 왔다갔다할 때 스님이 한쪽을 살짝 눌려주면 그렇게 기울어집니다. 그런데 확연히 반대쪽 무게가 무거우면 스님이 이쪽을 아무리 눌러도 절대로 따라오지 않아요. 그래서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거에요. 제가 해 보니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법문 듣고 좋아졌다고 해도 제 덕이 아니라 모두 자기 근기, 자기 복입니다. 제 말을 듣고 따라서 변한 것이 아닙니다. 고만고만한 경지에서 간당간당 흔들릴 때 살짝 거들어준 것 뿐이에요. 아예 얼토당토않은 상태라면 제가 아무리 깨우쳐주려 해도 못 깨칩니다. 자기 생각에 꽉 사로잡혀 있으면 관세음보살 진신과 3년을 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깨우쳐줄 수 있겠습니까.
(지금 깨어있기 102)
2
제가 법문을 하면 신도님들이 들으면서 고개들을 끄덕끄덕해요. "아이고, 스님 말이 옳소." 이렇게 말하면 제 말을 듣고 이해하는 사람이고, 고개를 저으면서 "에이, 아니에요." 하고 반응하면 제 말을 거부하고 듣지 않는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이는 것은 제 의견이 자기 생각과 같다는 뜻이고 좌우로 흔드는 것은 제 의견이 자기 생각과는 다르다는 뜻이지요. 제 법문이 옳아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과 같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스님도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저 스님이 좀 보게, 내 생각과 다르네. 저렇게 생각하면 안돼는데.' 이런 뜻입니다.
3.
저는 이런 것을 알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동의해줘도 속지 않고 동의해 주지 않아도 거기에 속지 않습니다. 스님 훌륭하다고 칭찬해도 속지 않고, 막 욕해도 거기에 속지 않습니다. 속으면 저만 손해거든요.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소리에 속아서 붕 떴다가 거품이 빠지고 나면 땅에 떨어져서 허리 부러지는 거예요. 비난한다고 거기에 속아서 밤새 잠도 못자고 괴로워하면 그것도 저만 손해지요. 각자 다 자기 식으로 생각하며 사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지금 여기 깨어있기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