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1
무질서의 자유
1.팜레이는 뒤쪽에 있는 방이 모두 휘어져 있는 아름다운 집이었는데, 어느 누구도 이 점을 결코 알아채지 못했어요. 아마도 그것이 내가 종종 삼면화에서 휘어 있는 배경을 사용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23)
2. 나는 파리고 가서 잠시 동안 머무렀습니다. 거기서 폴 로젠버그의 갤러리에서 열린 파블로 피카소의 전시를 보았는데, 그때 나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5)
3. 1943년~1944년경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28)
4. 하지만 그곳은 멋진 작업실이었지요. 나는 여러가지 이유로 그곳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그곳에서 죽었기에 머물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삶에서 후회하는 두 가지 일이 있다면 하나는 그 장소를 포기한 일이고, 다른 하나는 내로 가Narrow Strreet의 작업실을 포기한 일입니다.(29)
5. 아마 1961년에 이곳으로 왔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20년 넘게 머물고 있는 셉입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곳을 봤을 때 여기서는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 공간, 이 방의 분위기로부터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온 바로 그 순간부터 내가 여기서 그림을 그릴 수 있으리란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파리의 작업실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저 하나의 방일 뿐이었지만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그 순간부터 내가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30)
6. 네, 그랬습니다. 파리보다 런던을 더 잘 알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도시보다 런던에서 보다 수월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0)
7. 아닙니다. 천장을 떼어 냈기 때문에 지금은 이곳을 처음 보았을 때와 동일한 빛이 아닙니다. 동서향이라서 빛이 특별히 좋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곳에는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분위기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말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작업할 수 있겠구나 싶은 곳이 있는가 하면 작업을 할 수 없겠다는 느낌이 드는 곳도 있습니다. 아주 묘한 대목이죠. 그 장소가 지닌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31)
8. 나는 이곳의 무질서함 속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무질서가 내게 이미지를 제시해 주기 때문이죠. 어쨌든 나는 무질서 속에서 생활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내가 여기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옮긴다면 일주일 만에 그곳의 모든 것들이 무질서해질 겁니다. 나는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접시 등의 물건들이 지저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무질서한 분위기는 좋아합니다. (31)
9. 무질서를 선호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먼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브르타뉴에서 본 모래 언덕을 그릴 때 작업실의 먼지를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바닥의 먼지를 모두 그러모으는 지독히 힘든 일이었지요. 하지만 알다시피 이곳에는 충분한 양의 먼지가 있어서 그림을 비롯한 모든 것들에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헝겊으로 먼지를 닦아 젖은 물감을 올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물감이 마르고 나 뒤에 파스텔을 조절하듯이 그것을 조절합니다. 테이트 갤러리에 소장된 에릭 홀을 그른 초기 작품은 먼지로 채색되었습니다. 사실 그의 옷에는 물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닥의 먼지를 얇게 한 겹으로 발라 옷의 회색을 표현했습니다. 먼지는 영원하고, 영원토록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알게 되어 기쁜 먼지의 속성 중 하나는 먼지는 결코 변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40년 전 내가 그림에 붙여 놓은 상태 그래로 생생해 보입니다. 단 작업실의 먼지가 지닌 유일한 문제점은 내가 파스텔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먼지가 착색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 상태의 먼지는 회색 정장에 꼭 맞는 색깔입니다. 그것은 사실 일종의 파스텔이라고 할 수 있고, 아마도 파스텔보다 더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어쩌면 더 오래 지속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사물의 영속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플란넬 양복의 살짝 보풀이 이는 특성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문득 먼지를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에 먼지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먼지가 괜찮은 회색 플란넬 양복과 얼마나 흡사한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34)
10. 미술관은 작품의 재료가 먼지라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미술관은 그것이 파스텔이나 그와 유사한 것이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것은 그저 먼지일 뿐입니다. 반면 모래 언덕 그림의 경우에는 먼지가 안료와 혼합되어 질감을 자아냅니다. (34)
[메모 : 만지는 것과 다른 느낌 보이는 질감.]
11. 작품과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작업이 잘 진행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작업을 계속합니다. 밤에도 계속해서 작품에 손을 댑니다.
네. 아주 일찍 작업을 시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가 아침에 더 자유롭다는 것을 알거든요. 늦은 시간보다 이른 아침에 모든 일이 보다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많은 미술가들이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작업을 시작해서 오후를 지나 밤까지 지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대개 이른 아침에 작업이 훨씬 더 잘 됩니다. 어쨌든 작업이 진행된다면 말입니다.
작업이 잘 진행되면 쉬지 않고 계속 그려 나갈 수 있지만 때때로 잘 진행된다고 생각될 때 작업을 멈춥니다. 10분 정도 휴식 시간을 갖고 나면 지금까지 해 왔던 작업을 모두 잊고 돌아가서 작품을 다시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
12. 나는 혼자 있을 때 훨씬 더 자유롭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주변에 사람이 있을 때 보다 창조력을 발휘하는 화가들도 여럿 있을 것입니다. 나의 경우는 그렇지 않지만 말입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물감이 내게 지시하도록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내가 캔버스에 올려놓는 이미작 내게 작품을 지시하고, 그에 따라 점차적으로 작품이 형성되면서 드러납니다. 이것이 내가 혼자 있는 것을, 다시 말해 절망감과 함께 남겨져서 캔버스에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37)
13. 아니요. 때로 음악을 틀기도 했지만 나는 음악에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 나는 여기에 그냥 홀로 있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어쨌든 나는 일종의 몽롱한 상태에서 작업을 합니다. 하지만 작품이 모호해지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그리고 내가 구체화하려는 감각과 감정, 생각이 모호한 상태에서 작업을 합니다. 내게 긍정적으로 작동할 무언가가 나타날 때 나는 보다 명확해집니다. 나는 그것이 비판 능력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판 능력을 통해서 열리는 기회를 불현듯 보게 되고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햇던 이미지가 나타날 가능성을 보게 됩니다.(37)
14. 나는 캔버스에 붙으로 아주 대략적인 스케치를 그립니다. 대상의 모호한 윤곽만을 그린 뒤 대개 아주 큰 붓을 사용해서 작업을 시작합니다. 즉각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점차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아닙니다. 나는 대게 배경을 가장 나중에 그립니다. (38)
15. 하지만 지금은 배경에 항상 아크리 물감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 위에 무언가를 그리고 싶지 않습니다. 밑칠을 하지 않은 원래의 캔버스가 이미지를 흡수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38)
16. 어느 단계에서 아크릴 물감으로 배경을 그려 넣습니까?
이미지를 어느 정도 만들었다고 느낄 때입니다. 배경을 그려 넣으면 이미지가 어떻게 작용할지를 살피고 난 다음에 이미지를 계속 그려 나갑니다. (39)
17. 그 캔버스는 파스텔지 같은 매우 거친 종이와 유사합니다.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를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은 1940년대 후반 몬테카를로에서 살고 있을 대 떠올랐습니다. 당시 나는 돈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카지노에서 돈을잃었다든가 했을 겁니다. 이전에 사용했던 캔버스 몇 개를 갖고 있었는데 그 캔버스를 뒤집어 보고는 밑칠이 안 된 쪽이 작업하기에 훨씬 수월하다는 점을 발견했씁니다. 그때 이후로 줄곧 밑칠을 하지 않은 면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39)
18.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말했습닏. 캔버스르 3개월 동안 벽으로 돌려놓고 무엇을 하려 했는지를 잊어야 그 뒤에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 채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요.
네,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이 너무 협소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약 3개울이 지나면 애초에 하고자 했던 바를 잊게 되고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40)
19. 나는 가능한 한 가장 특색 없는 제목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늘 작품을 '이러저러한 것을 위한 습작'이라고 부릅니다. 그림을 기억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 말버러 갤러리가 제목을 덧붙입니다. 그 한 가지 이유는 전시 등을 위해 여러 작품들을 모을 때 작품에 제목이 붙어 있으면 일이 보다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갤러리가 '삼면화-T.S. 엘리엇의 시 <스위니 아고니스테스>로부터 영감을 받은Triptych by T.S Eliot's poem 'Sweeney Agonistes'이라고 제목을 붙인 그림의 경우, 그들은 내게 그 이미지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질문했습니다. 나는 당시 <스위니 아고니스테스>를 읽고 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그렇게 제목을 붙였죠. 이런 식으로 제목이 생기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특색이 없는 제목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제목이 이미지 안에서 거짓말을 하고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즉 제목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1)
20. 당신은 보는 사람이 작품을 자유롭게 해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로 사람들의 아주 형편없는 오해가 거슬리지는 않습니까?
나는 오독에 화가 나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사람들이 자신이 바라는 대로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나조차도 내가 한 작업의 상당 부분을 해석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내가 영감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저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그릴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지는 않습니다. 궁긍적으로 나는 무언가를 말할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내 작품을 구입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흥분을 위해 그림을 그렸고 생계를 유지하려면 다른 일을 해야 할 거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나는 그림이 판매될 정도로 점점 운이 좋아져서 작품 활동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어도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관심합니다.
정말로 보는 사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림을 그립니까?
나는 나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립니다. 그것 말고 달리 무엇을 위해 그리겠습니까? 보는 사람을 위한 작업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겁니까? 보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상상하는 겁니까? 나는 나 말고는 그 누구도 흥분시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내 작품을 좋아해 주면 나는 언제나 놀랍니다. 내가 몰두하는 일을 통해 생활을 할 수 있어서 나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행운이라면 말입니다. (정육점 44)
21. 그런 입장이라면 주문받은 초상화는 거의 그리지 않겠군요.
네 자주 그리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상화를 통해 돋보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또는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갖고 있지요. 그게 바로 초상화 작업의 특이한 점입니다. 화가가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면 그들은 그 초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즉 인간적으로 좋아하고 외관도 마음에 드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좋아합니다.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의 캐리커처, 일반적으로 내가 그리는 방식보다 훨씬 더 희화화된 그림만을 그릴 수 있겠지요. (44)
22. 네, 사실 그런 방식은 나와 아주 잘 맞습니다. 나와 일하는 갤러리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저 홀로 작업을 할 뿐이고, 보내고 싶은 그림을 다 그리면 그들이 와서 가지고 갑니다. 그들이 그 작품을 팔 수도 있고 팔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다시말해 오늘날의 전반적인 상황이 당신과, 그리고 작품에 대한 당신의 태도와 잘 맞는다는 뜻입니까?
나는 내 삶이 가능한 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나는 그저 내가 작업을 할 수 있는 최적의 분위기르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우파에 투표합니다. 그들이 좌파보다는 덜 이상적이어서 좌파의 이상주의로부터 방해를 받게 되는 경우보다 더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우파가 곤란한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45)
23. 특히 오늘날과 같은 때에 미술가가 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많은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면 바보 같은 짓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정말로 그리고 싶은 주제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제가 없으면 자동적으로 후퇴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파고들어 다시 되돌리게 만드는 주제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훌륭한 미술은 항상 사람들을 인간의 취약한 상황으로 되돌려 줍니다. 또한 오늘날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수준일지라도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미술의 역사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다양한 예술을 접하고 다큐멘터리 서적들을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나는 야생동물에 대한 책도 읽었습니다. 그 이미지가 나를 흥분시키고 가끔은 인간의 신체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래전 어딘가에서 구입한 여과 장치의 이미지들을 담은 책이 있습니다. 그 이미지들은 단순히 여러 종류의 액체를 거르는 여과 장치들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만들어진 방식은 내가 사람의 신체를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다른 특징들을 제외한다면 결국 사람의 신체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여과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또한 영화도 아주 많이 봤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세르게이 에이젠시테인의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 이후에는 루이스 부뉴엘의 영화, 특히 그의 초기작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부뉴엘의 영화 역시 놀랄 만큼 정확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화가 어떻게 직접으로 영향을 미쳤는지는 말할 수 없지만, 내게 만들어야 하는 시각 이미지의 예리함을 보여 줌으로써 시각 이미지에 대한 나의 태도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합니다. (46)
24. 부뉴엘의 영화가 지닌 잔인한 장엄함 속에서 인간성을 재발견하려는 수단이라고 말한 앙드레 바쟁의 언급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정말로 부뉴엘의 작품이 지닌 잔인함이 맞습니까? 미술에서는 모든 것이 잔인해 보입니다. 실재가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추상 미술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추상에서는 잔인함을 볼 수 없으니까요. (47)
25. 당신은 사람들이 온건한 특징 때문에 추상 미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까? 엘리엇의 표현처럼 "인간은 실재를 드다지 감당할 수 없기"때문에 사람들이 추상을 좋아한다고 생각합니까?
네. 엘리엇은 온건함을 원했기 때문에 교회 신자가 되었건 거라고 생각합니다. (47)
26. 교회의 교리가 대단히 온건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오직 독생자의 십자가 책형을 통해서만 인간이 구원받는다는 생각은 삶에 대한 상당히 비극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리에는 여덟가지 복이라는 당근도 있지만 지옥의 위협도 존재합니다. 자신이 지옥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기독교도라면 영원히 고통 속에서 살기보다는 불멸의 영혼을 갖지 않는 편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아니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에 상당히 애착을 갖기 때문에 단순한 절멸보다는 차라리 고통을 택할 것입니다.
당신이라면 고통을 택하겠습니까?
네, 그럴 겁니다. 만약 지옥이 있다면 나는 항상 탈출의 가능성이 있다고 느낄 테니까요. 나는 탈출할 수 있다고 늘 확신할 겁니다.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