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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볼 때 집착할 게 없다

T1000.0 2022. 10. 5. 18:30

예쁜 신발의 예쁨이 내가 보기에 예쁨임에 동의한다면
내가 볼 때 나와 신발은 일체를 이룬다. 즉 하나로 연결된다. 둘이 아니다. 나와 신발은 분리되지 않는다.
예쁜 신발은 나와 일체를 이루며 나에게서 산출된다. 요컨대 일체유심조.

예쁜 신발은 따로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볼 때 예쁜 신발이 저기 따로 독립되어 존재한다고 분명하게 체험한다. 따로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와 따로 독립되어 존재한다가 서로 모순된다. 따로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도 옳고, 따로 독립되어 존재한다는 체험도 부인할 수 없다. 옳다.

옳다와 옳다의 서로 모순된 양극단을 우리는 살아간다.
이 양극단에서, 따로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를 그르다고 하지 않으면서 또 따로 독립되어 존재한다를 그르다고 하지 않으면서, 즉 어느 쪽도 부인하지 않으면서(또는 어느 쪽도 머물지 않으면서/집착하지 않으면서) 중심을 잡아야하는데 그 길이 이름하여
중도中道다.

<금강경>은 이 문제에 대해 '내가 보는 것을' 환상처럼 보라고 한다. 풀어말하면 환상이라 해도(따로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틀리고, 환상이 아니라고해도(따로 독립되어 존재한다) 틀리다. 고로 환상처럼 보라.
환상의 속성은 무엇인가? 실체는 없는데 작용은 있다.
실체가 없으므로 아무 얻을 것이 없다. 따라서 집착할 게 없다.
요컨대 "내가 볼 때, 내가 볼 때 집착할 게 없다."


볼 때는 봄만이 있다.
주체도 대상도 하나다.
그 작용에 주목하자.
하나가 아니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