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는 행복
"가끔 사람들은 행복을 쾌락과 혼동합니다. 얼마 전 내가 인도의 라지푸르에서 강연을 할 때의 일인데, 내가 삶의 목표가 행복에 있다고 말하자 청중 속의 한 사람이 말하더군요. 어떤 구루(영적 스승)가 사람은 성적인 행동을 하는 순간에 가장 행복하므로 섹스를 통해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사람은 내가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던 겁니다. 난 내 생각을 말해주었습니다. 더 이상의 고통이 없는 해탈의 단계에 이를 때 인간은 가장 행복하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영원한 행복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과 가슴에 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육체적인 쾌락에 의존하는 행복은 불안정합니다. 어느 날엔 그곳에 있지만, 그 다음 날엔 없어질 수도 있는 행복입니다."
T.
떠나지 않는 행복은,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단과 목적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이 아니라, 생산, 생산성, 능력에 기초에서, 즉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
자신의 신체를 지나치게 오만하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우며 지나치게 육감적인 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4. 그러므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유익한 것은 우리의 지성 또는 이성을 가능한 한 완전하게 하는 것이며, 오로지 이것에만 인간의 최고의 행복 또는 지복이 있다. 왜냐하면 지복은 신에 대한 직관적 인식에서 생기는 정신의 만족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성을 완전하게 하는 것은 신 및 신의 속성들 그리고 신의 본성의 필연성에서 나오는 활동들을 인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성에 의하여 인도되는 사람의 궁극적 목적, 즉 그로 하여금 다른 모든 욕망들을 제어하려고 애쓰도록 하는 최고의 욕망은 그 자신 및 그의 인식의 범위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모든 것을 타당하게 파악하도록 그를 이끄는 욕망이다.(에티카 4부 부록)
니체는, 자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생애를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금욕적인 덕목들-겸손, 검소, 순수-을 독점하여, 그것들을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실제로는 거의 금욕적이지 않은 목적들에 사용한다. 철학자는 그것들을 자신의 독특함의 표현으로 삼는다. 철학자에게서 그것들은 도덕적 목적들도, 또 다른 삶을 위한 종교적 수단들도 아니며, 오히려 철학 그 자체의 <결과들>이다. 철학자에게는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 검소, 순수는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단과 목적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이 아니라, 생산, 생산성, 능력에 기초에서, 즉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 겸손, 검소, 순수 이것들은 그[철학자]에게는 현자가 되는 방식이고, 자신의 신체를 지나치게 오만하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우며 지나치게 육감적인 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