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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좀Rhyzome과 무위無爲

T1000.0 2022. 9. 23. 06:53

주변 환경과 리좀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생명력은 이런 상황에서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신경 써서 잘라내고 솎아주고 가꾸기 때문에 리좀적인 생명력이 오히려 약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질문 속에 있다. '왜 잘 다듬어주고 정성껏 돌봐주는 데 제대로 못 사는 걸까?'가 아니라, 정성을 다해 돌봐주기 때문에 제대로 못 사는 것이다.

생명은 아무리 외부에 장애물이 있더라도 어떻게 그것을 겪어내고 이겨낼지 스스로 방법을 찾아낸다. 무엇보다 생명은 리좀적이어서 무수히 다양한 방향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쪽이 막힌다면 기꺼이 또 다른 방향을 찾아간다. 주변의 힘들을 빌리기도 하고, 다른 생명 안으로 들어가서 온전히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가기도 한다.

생명은 그대로 두면 리좀적 생명력을 발휘해서 잘 살아가지만,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방해받으면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풀들은 볼품이 없고 먹을 수도 없고 어디 쓰임새가 없다. 하지만 그 스스로의 생명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센 놈들이다. 누구에게 예쁘게 보인다거나 먹을거리가 되어 주는 것 혹은 어딘가에 쓰인다는 것은 모두 타인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제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구를 위한 존재가 되기 위해, 잘 쓰이기 위해, 가꾸고 다듬고 억지로 만드느라 생명력을 소진할 것인가? 생명 그 자체로 존재하며 자신의 생명력을 더 확장할 것인가? 무언가를 위한 존재는 생명력이 소실될 수밖에 없다. 존재는 존재 그 자체일 때 최대의 생명력을 가지는 것이다. (김연실, 들뢰즈와 산책하다 70~71)

T.

무위, 춤추기가 춤추기의 목적일 때 최대의 생명력을 가진다.

나는 리좀. 나는 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