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

무지타파2 : 스피노자

T1000.0 2019. 10. 28. 19:20
1. 의식의 본성은, 결과들을 받아들이되 그 원인들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스피노자의 철학 33)

1-1원인들의 질서는 끊임없이 자연 전체를 변용시키는, 관계들의 결합과 해체의 질서이다. 그러나 의식적 존재들인 우리는 이러한 구성과 해체의 결과들만을 받아들인다.(34)

2.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중아함경>
부처의 연기를 스피노자의 원인들의 질서와 오버랩시켜보자. 우리 모두가 저마다 하나의 소우주라는데 동의한다면 우리 연장 속의 각 신체와 사유 속의 각 관념과 각 정신에는 부처가 말한 자연법칙으로서의 연기가 고스란히 적용된다. 즉 관계들의 결합과 해체의 질서는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즉 결합. 동시에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즉 해체.
그런데 문제는 결과만을 받아들이는 우리 의식의 상황이다. 이점이 중요하다.

1-3 우리의 신체에 <일어나는 것>만을, 우리의 영혼에 <일어나는 것>만을, 즉 우리 신체에 미친 한 신체의 결과, 우리 영혼에 미친 한 관념의 결과만을 받아들이는 그러한 상황에 우리는 놓여있다. 자신의 고유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우리의 신체, 자신의 고유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다른 신체들과 다른 관념들이 각각 무엇인지, 그리고 이 모든 관계들이 구성되고 해체되는 규칙들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우리의 인식과 우리의 의식의 주어진 질서 속에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다. 요컨대 우리가 사물들을 인식하는 조건들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의식을 갖는 조건들 때문에 우리는 부적합한 관념들, 혼란스럽고 절단된 관념들, 즉 자신들의 고유한 관계들로 부터 분리된 결과들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35)   

2-1 고유한 관계들로부터 분리된 결과들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의식의 원인으로 나를, 즉 원인을 모르는 무지를 나라는 목적원인으로 메운다. 예컨대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여기 의식의 주체 또는 생각의 원인을 나로 삼는데, 주의를 기울이면 나라는 것이 선험적으로, 초월적으로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생각과 별개로, 선험적으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나는 결코 찾을 수 없다. 


1-4 어떻게 평온한 의식이 불안을 가지게 될까? 어떻게 아담은 자신을 행복하고 완전하다고 생상할 수 있었을까? 삼중의 환상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결과만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물들의 질서를 전도시킴으로써 자신의 무지를 메운다(목적인이라는 환상). 의식은, 한 신체가 우리 신체에 미친 결과를 외부 신체의 작용의 목적인으로 만든다. 이제 의식은 자신을 제1원인으로 간주하게 되고, 신체에 대한 자신의 지배력을 내세운다(자유 명령이라는 환상). 의식이 자신을 목적들을 조직하는 제1원인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곳에서, 의식은, 지성과 의지를 갖고 있는 신, 목적인과 자유 명령에 의해 행위하며, 영예와 처벌에 따르는 세계를 인간에게 마련해 놓은 신을 내세운다(신학적 환영).
1-5. 의식은 환상들로 형성된다고 말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의식은 자신을 구성하는 삼중의 환상, 즉 목적성의 환상, 자유의 환상, 신학적 환상과 분리 불가능하다. 의식은 두 눈 뜨고 꾸는 꿈일 뿐이다. 


2-2 우리는 의식이 두 눈 뜨고 꾸는 꿈일 뿐이라는 스피노자의 논제에서 의식은 3중의 환상과 분리 불가능함에 주목한다면 이런 대안이 나온다.

여몽환포영. 

꿈처럼, 환영처럼 보라는 것은 은유가 아니다. 실상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