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로 세계가 출현한다.
1.
평면 위에 선을 그으면 그 선을 기준으로 이쪽과 저쪽이 생겨나고, '이쪽으로 저쪽으로 넘어갔다' 혹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넘어왔다'는 개념이 생겨납니다. 만약 그 선이 없어진다면 넘어갔다는 말도 넘어왔다는 말도 함께 사라집니다. 분별의 경계선을 긋기 때문에 오고 감이 생기는 것이지 그 선을 거두면 자유롭게 움직이되 간다고 할 수도 없고 온다고 할 수도 없는 세상이 열립니다. 간 바도 없고 온 바도 없이 일체의 분별이 끊어진 경지가 그것입니다. (금강경 강의 455)
T.
분별의 경계선으로 오고 감이 생겨난다.
그 선을 거두면 자유롭게 움직이되 간다고 할 수도 없고 온다고 할 수도 없는 세상이 열린다.
뒤집어 말하면,
분별로 세상이 출현한다.
생겨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고
깨끗한 것고 없고 더러운 것도 없고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다.
2.
無名天地之始 무명 천지지시
有名萬物之母 유명 만물지모
(도덕경)
3.
그러한 개념비판과 치료, 건강, 치유 등을 언급하는데 대한 거부는 영국 논리학자인 조지 스펜서 브라운을 생각하게 하는 군요. 그는 자신의 유명해진 저서 <형식의 법칙들>에서 관찰이라고 하는 것은 분별 행위로 시작된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내가 뭔가를 묘사하려 한다면 나는 먼저 어떤 분별을 결정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분별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무엇이 보여 질 수 있는지를 규정한다고 조지 스펜서 브라운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보든지 간에 선악의 분별을 통해서는 빈부, 미추, 신구, 병과 건강 등의 분별을 가지고 보는 것과는 다른 것을 관찰할 수 있는 겁니다.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조지 스펜서 브라운에게서 '분별하라 그러면 세상이 나타나게 되리라'Draw distinction and a universe come into being라는 문장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전체 우주가 생겨나게 만들고 사람들이 자신과는 분리되어 소위 외부 공간에 있다고 여기는 실재를 낳습니다. 또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그런 물음이 문제라면 우리는 어떤 의미론적인 마술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치료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을 필연적으로 치유활동을 필요로 하는 병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와 반대로 (의미론적 마술만을 얘기하는 것, 다시 말해서, 치유를 언급하지 않으면 병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저는 어떤 정신적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을 도와서 그가 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진리는거짓말쟁이의발명품이다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