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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놈들 - 리좀

T1000.0 2022. 3. 18. 18:24

주변 환경과 리좀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는 생명력은 이런 상황에서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신경 써서 잘라내고 솎아주고 가꾸기 때문에 리좀적인 생명력이 오히려 약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질문 속에 있다. '왜 잘 다듬어주고 정성껏 돌봐주는 데 제대로 못 사는 걸까?가 아니라, 정성을 다해 돌봐주기 때문에 제대로 못 사는 것이다. (들뢰즈와 산책하다. 70)



생명은 리좀이기 때문에 주변 환경에 따라 언제 어떻게 다른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해진 방향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는 원인을 제거하고, 정성을 다해 한쪽으로만 가도록 길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선택할 것은 부모의 목적대로 사회에 잘 쓰이기 위한 아이를 원하든지, 아니면 아이 존재 자체를 긍정할 것인지 하는 것이다. (들뢰즈와 산책하다 73)


T.

1.윤리적 법률과 규범들조차도 성찰의 가능성을 파괴한다. 그것들은 책임 있는 행동의 토대들을 제거하고 복종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 하나의 정해진 방향으로 키우기 위해 한쪽으로만 가도록 길들인다. 그렇다면 선택할 것은 정성을 다해 돌봐줄 것인가? 아니면 존재 자체를 긍정할 것인가?

2. 잃어버린 이야기를 찾습니다. <벽암록>같은 어느 선 이야기 책에서 읽었는데, 그게 어디에서, 어느 책인지 도대체 찾을 수가 없다. 꼭 찾고 싶은 이야기 중에 하나인데, 내용인즉 노스님이 귀가해 절에 오니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있었다. 하여 동자승을 불러 어찌된 일이냐 물으니 한 손님이 신발을 정리하는 예절을 알려줘 그리했다고 하니 노스님은 그 손님을 불러 화를 내었다는 대강의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었을때 의아했다. 왜지? 하며 나를 따라다녔는데, 이제는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안다. "성찰의 가능성을 파괴하고 정성을 다해 돌봐주기 때문에 제대로 못 사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다. 돌봐주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고 기다리며 있는 그대로를 긍정하는 것은 내 경험에 비추면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하는 것보다 더 어렵고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