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통(횡단)학

수행에 관하여

T1000.0 2013. 1. 22. 15:43

비록 변계소집성의 세계라 할지라도 그것은 잘못된 마음작용인 행의 집착에 따른 것일 뿐 그 근본은 무상무아입니다. 이제 수행에 의해서 무상무아를 보게 되는 순간 행의 지멸이 이루어지고 모든 집착이 사라집니다. 이 집착이 괴로움의 근원이므로 행이 지멸되는 순간 괴로움이 없어지고 열반의 맑고 고요하며 온갖 삶을 서로서로 있게 하는 따뜻한 자비의 기운이 넘쳐나는 세계를 이루게 됩니다.(<법성게> p171)

 

T1000.0 : 행[색수상식]은 의지작용이다. 그런데 의지는 나의 의지라고 말하듯이 그 원인이 내가 아님을 유념해야한다. 의지는 생각이다. <에티카>를 인용하면 "모든 의지작용은 관념 자체일 뿐이다.[각주:1]" 간단히 말해 의지는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처럼 생각일 뿐이란 점을 알아야한다. 의지는 긍정 또는 부정을 포함하는 관념인데, 이때 긍정 또는 부정의 원인은 '나'가 아니라 오온五蘊이다. 의지는 색수상행식의 순환반복을 통해 형성된 업식의 표현이며, 업식을 '나'라고 잘못 알고 집착하는데서 모든 것이 어긋난다. 내가 긍정하는 의지 또는 부정하는 의지는 나를 배경으로하는 인연들이 원인이 되어 형성된 결과일 뿐, 그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다. 내가 김치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김치의 여러조건을 따져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배경 속에서 인연을 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지, 행은 '나'와 상관없으며 나아가 '나'는 실제로는 인연으로 형성된 업식을 나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라는 실체는 없다. 수행修行은 행을 닦는다는 말이다. 행을 닦는다는 것은 선업을 짓는다는 말이 포함되어있다. 행을 닦는다는 것은, 선업을 짓는다는 한에서 아직 유위법의 세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고, 이제 닦을 것도 없을 때라야 무위법의 세계로 넘나든다. 닦을 것이 없는 게, 행의 지멸이다. 그런데 행의 지멸은, 행은 관념이기 때문에 그리고 인연을 벗어나 존재할수 없기 때문에 행이 사라짐을 뜻하지 않는다. 행을 닦고 또 지멸할 수 있는 계기는<반야심경>에 나오는 '조견照見'이다. 오온의 있는 그대로를 '비추어 봄'으로써 오온개공五蘊皆空을 깨닫게 되고, 행의 지멸을 위해 수행을 한다. 행의 지멸은 행을 그냥 흘러보내는 것이다. 행 역시 생각이고 마음이므로 한 생각 일어나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한 생각 사라지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으로 긍정도 부정도 머물지 않는다. 이를 위해 <금강경>이 알려주듯이 "모든 상이 상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 행의 지멸이고, "일체유위법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처럼 관하는 것"이 행의 지멸이고 이로써 열린 마음으로, 따뜻한 기운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원성실성의 세계]에 동행하는 자유를 누린다. 즉 무상무아 그자체가 된다.   

 

 

  1. <에티카> 제2부 정리 49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