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체계의 폐쇄성과 관찰자의 이중보기
T.
신경체계의 폐쇄(성)와 관찰자의 외적 관점이라는 가정들은 내가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라면, 관찰에 대한 두 가지 전망들의 구분을 함축합니다.
한편으로 관찰자들은 체계에 가해진 외적 충격을 서술하며, 자극과 대응, 투입과 산출, 원인과 결과 사이의 상호관계들을 구성합니다.
여러 가지 감각의 신경들은 항상 그에 상응하는 느낌들, 예를 들어 빛, 소리, 압력 등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는 이러한 일이 그런 느낌을 초래하는 자극의 물리적 속성과는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체계는 그 자신의 특유한 방식으로 - 외적 영향들과 독립적으로 - 작동합니다.
[알다시피 비행기 외부에서 일어난 것은 비행기 안의 작동적인 동학과 관계가 없었으며,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리학과 내적 체계 동학의 현상 영역은 환경 안에서의 행위 및 관찰 가능한 운동들의 영역과 교차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역들은 그 각각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 영역들 중의 한 영역의 현상들이 다른 영역으로 유래할 수 없습니다.
1.
신경체계의 폐쇄(성)와 관찰자의 외적 관점이라는 가정들은 내가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라면, 관찰에 대한 두 가지 전망들의 구분을 함축합니다.
한편으로 관찰자들은 체계에 가해진 외적 충격을 서술하며, 자극과 대응, 투입과 산출, 원인과 결과 사이의 상호관계들을 구성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체계는 그 자신의 특유한 방식으로 - 외적 영향들과 독립적으로 - 작동합니다.
그렇습니다. 생리학과 내적 체계 동학의 현상 영역은 환경 안에서의 행위 및 관찰 가능한 운동들의 영역과 교차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영역들은 그 각각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그 영역들 중의 한 영역의 현상들이 다른 영역으로 유래할 수 없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줄 수 있나요?
나는 내가 한 체계의 내적인 작동 동학과 그 체계 전체의 상호작용 영역에서 일어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설명하고 싶을 때 계기 비행을 예로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종사들이 조종실에 앉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그들은 외부 세계에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은 측정값들과 표시기들을 기초로 해서 행동하고, 수치들이 변하거나 또는 수치들의 특수한 조합들이 나타날 때 자신들의 계기들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적절한 수치들을 지정된 한계들 내에 유지하기 위하여 감각운동적 상호관계들을 설정합니다. 비행기가 착륙하면 비행기가 도착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친구들과 동료들이 나타나서는, 짙은 안개와 위험한 폭풍우 속에서 조종사들이 성공적이고 훌륭하게 착륙한 것에 대해 축하할지도 모릅니다. 조종사들은 당황해 하면서 묻습니다. "폭풍우라고? 안개라고? 무슨 말들을 하는 거야? 우리는 단지 우리의 계기들을 다루었을 뿐이라고!" 알다시피 비행기 외부에서 일어난 것은 비행기 안의 작동적인 동학과 관계가 없었으며,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있음에서 함으로 101)
2.
음, 제가 대변하는 대개의 그런 아이디어들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벌써 150년도 더 이전에 독일의 위대한 생리학자인 요하네스 뮐러는 그가 특수한 신경에너지의 원리라고 부른 멋진 관찰을 공식화했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반영론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 겁니다.
요하네스 뮐러가 무엇을 관찰했나요?
여러 가지 감각의 신경들은 항상 그에 상응하는 느낌들, 예를 들어 빛, 소리, 압력 등을 불러일으키는데 그는 이러한 일이 그런 느낌을 초래하는 자극의 물리적 속성과는 무관하게 진행된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우리 감각이 원래 그대로의 실재를 반영하지 않는다고요?
그래요.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원인]을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자극을 받은 우리의 감각이 우리 앞에 펼쳐내 보이는 것뿐입니다. 인식의 입구에서 (인식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소위 세계의 심부름꾼들은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은) 그들 자신의 특별한 속성들을 없애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연관하여 오늘날은 자극의 무차별적 부호화가 얘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극 혹은 교란이 있다는 것만 알 뿐입니다. 이게 신경세포가 알려주는 전부입니다. 그러나 교란의 원인은 불분명하고 그 원인은 특수하게 부호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시신경섬유를 식초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색이 있는 빛을 지각하게 됩니다. 혹은 미각을 느끼는 혀의 돌기를 몇 볼트의 전극봉으로 자극할 경우 우리는 식초 맛을 느끼게 됩니다. 생리학 교재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관찰을 통해 볼 때 외부세계가 내부세계에 베껴진다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고도 말이 되지 않는 얘기라 할 것입니다. 식초가 색의 흔적이 되고 전기가 식초가 되는 겁니다!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22)
T.
내가 보고 있는 세계는 나의 신경체계가 산출하는 세계이며 내가 보는 이 세계는 보는 그대로의 실재가 아니다. 하여 이 실재를 마뚜라나가 말하는 것처럼 괄호친 실재, (실재)로 보고나 <금강경>의 사구게처럼 '환상처럼(여몽환포영)' 본다.
사정이 이러하니 환상에 집착하는 것은 말그대로 어리석다. 집착할 이유가 없다. 집착으로 인해 생기는 모든 괴로움은 이를 '잘못 알고 있는' 무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