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까? 오직 모를 뿐
1.
실수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실수가 현재에는 발생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실수가 나중에 실수라고 불리게 될 행위가 이루어진 뒤에 발생하고, 성찰이라는 사후적 행동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우리가 하는 것'을 '하는' 그 순간에는, 그것을 나중에 실수라고 부르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점이 받아들여지고 나서야 대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뚜라나, 있음에서 함으로 17)
2.
만약 추상화가 패턴 제작에 지나지 않는다면, 때로 추상화에 대해서 구상화의 경우와 동일하게 본능적인 반응을 보이는 나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유행입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까?
나는 오직 시간만이 그림에 대해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미술가도 살아생전에 자신이 그린 작품에 조금이라도 좋은 점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그 작품에 대해 형성된 이론들로부터 이를 가려내기 시작하려면 적어도 75~100년은 걸리기 때문입니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두고 형성된 이론에 따라 작품을 접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행은 당신이 특정한 것들에 감동을 받아야 하고 그 밖의 다른 것들에는 감동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크게 성공한 미술가들조차 자신의 작품이 조금이라도 좋은지 아닌지를 결코 알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겁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181)
3.
체험의 순간에는, 지각과 환각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내 주장입니다. 만일 당신이 창문 밖에 유니콘이 있다고 나에게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면, 그때에 당신은 완전히 그 세계에 빠져 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의 전체 몸은 그러한 체험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세계에 흡수됩니다. 오직 나중에 가서야 유니콘이 한 쌍의 새들로 인한 나뭇잎들의 다소 이상한 움직이었음을 확인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것은 환각이란 그것이 다른 체험에 의해 자격을 박탈당하기 전까지는 타당한 것으로 남아 있는 체험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보고 서술하는 것이 '실재하는 어떤 것'인지를 실제로 전혀 모르겠군요.
체험의 순간에는 이러한 구분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항상, 다른 체험들에의 준거에 의존합니다. 다른 체험들은 다시 또 다른 체험들과의 관계에서 인식 혹은 환각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이어집니다.
실제로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가정하는 것이 환각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심층적인 의미로 도대체 확신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우리의 지각이 내일 환각으로 드러날 것인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우리의 전체의 삶을 통틀어 타당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어제 내가 말한 모든 것이 잘못이었다고 내일 당신에게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주말쯤 되어서 당신의 칠레 여행이 실수였음이 드러날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당신이 녹음된 테이프들을 다시 듣게 된다면, 당신은 움베르또 마뚜라나가 완전히 난센스를 말하고 있다고 결론짓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함께 하는 우리의 시간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의 책들을 읽었고, 표를 끓었으며,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이 모든 안전성을 급작스럽게 상실하고 나의 이전의 신념들이 붕괴된다면 나는 아마도 엄청 당황스러워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겨우 이러한 단순한 이유만으로 나는 나의 칠레 여행을 실수로 간주할 마음을 갖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신이 언젠가 결국엔 이러한 평가로 마무리하지 않을 것인지 쉽사리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측면은 우리가 타당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체험들을 우리가 항상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당신은 옳습니다. 우리의 삶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안정성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암묵적인 신뢰로부터 작동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조적 연동의 정합성 내부에서 지내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 실수를 저지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실수는 드물게 일어나고, 관찰자와 독립된 실재에 준거에 어떤 실패를 가리키지도 않습니다. 실수들은 언어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후험적인 평가들 및 성찰입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219)
T.
#실수인지아닌지어떻게알까 #오직모를뿐
내가 틀릴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하니 나의 책임이다.
나의 길을 간다.
#기쁨의윤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