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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지역무득 無智亦無得

T1000.0 2022. 10. 26. 14:15


1.
그렇지만 당신의 작업은 원래부터 앎을 매개한다는 교육학의 근본의도와 원리적으로 모순되는 것 아닌가요? 당신은 늘 우리의 근원적인 모름을 강조하잖아요.

교사들의 보통의 생각은 자신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학생들은 아무 것도 모르며 그래서 배움이란 모름을 점차적으로 제거하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쁜 상태를 좋은 상태로, 모르는 사람을 아는 사람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서 철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사처럼 작업을 하지요. 연금술사의 점진적인 변형이라는 학습이론적 은유로부터 출발하게 되면 학생들은 아주 싼 물질이죠. 그렇지만 다양한 단계를 거쳐서 더 나은, 더 고귀하고 가치 있는 물질로 바뀌어야 하는 물질입니다.

그리고 학생을 바꾸는 마술재료인 효소는 앎(지식)이란 얘기고요.

그렇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믿음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앎을 매개한다는 생각에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앎은 매개되는 게 아닙니다. 앎(지식)이라는 것은 어떤 유기체에게 (누군가에게) 특정의 결과를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설탕, 담배, 커피와 같이 여기서 저기로 옮길 수 있는 그런 대상, 물건 혹은 사물에 파악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 생각에는 이와 반대로 앎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 자신으로부터 발생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앎은 본질적으로 그러한 발생 혹은 창조의 과정이 가능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배우는 사람의 모습은 이런 식으로 이제 다르게 나타납니다. 배우는 사람은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으며 국가적으로 정당성을 부여 받은 권위가 (선생님이나 교수가) 나서서 사실과 자료 혹은 지식들을 채울 수 있는 그런 비어 있는 상자가 아닙니다. 어떻게 배움이 작동할까라는 질문과 관련하여 움베르또 마뚜라나, 고든 패스크 그리고 그와 몇몇 다른 사람이 대변하는 생각은 새로운 교육학적 개념 틀을 공식화하는데 매우 흥미로울 겁니다. 배우는 사람은 이러한 인지(지각)이론적 관점에서 보면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자입니다. 그는 스스로 앎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푀르스터,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108)

T.
앎은 매개되는 것이 아니다. (무득無得) 얻을 수가 없다. 앎은, 지혜는 밖에서 안으로 침투하는 외부의 무엇이 아니다. (무지無智) 배우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구성하는 자, 스스로 앎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