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구제할 중생이 본래 없는]
1.
내가 제안하는 바는 선생님들이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학생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 학생들의 머릿속을 자신의 생각으로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포기하고 자신도 아는 것이 없다는 의식을 가지고 수업을 들어간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금언에 기반 한 소크라테스식 무지의 태도를 취해야 해요. 근본적인 무지의 태도를 대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비하면 이 정도만 해도 이미 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식의 무지자는 뭐를 하나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무엇을 합니까? 사람들은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발명품 110)
2.
그게 바로 저의 제안입니다. 안다고 하는 교사가 알고자 하는 연구자가 되도록 하라! 이 생각을 확장시켜 보면 소위 학생과 선생님이 멋진 물음에서 출발하여 함께 앎을 만들어 가는 협력하는 동료가 되는 겁니다. 협력, 공동 탐구, 공동연구의 분위기가 생겨나는 거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호기심과 열정을 깨우고 자신의 생각에 자극을 주게 되며 이미 예정된 결과에 봉사하기 보다는 공동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던 그리고 상호간의 놀라움의 출발점이 되었던 물음에 헌신하게 됩니다. 각자 다른 사람의 능력에 의존하게 되며 모든 것을 다 아는 어떤 개인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놀라움 같은 것은 더 이상 없게 됩니다. 관련된 질문들이 자신의 질문이 됩니다. 이 같은 교사 학생간의 관계를 내 친구 고든 패스크는 좀 더 철저한 방식으로 규정합니다. 그의 제안은 역할을 서로 바꾸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학생이 되고 학생이 선생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학생은 뭘 가르치지?'라는 질문이 제기되고 '학생은 선생님에게 자신의 특성에 대해서 알려 주며, 자신의 선입견을 분명히 말해주고, 어떻게 자기가 세상을, 환경을, 만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지를 알게 해준다.'라는 답이 제시됩니다. 고든 패스크는 말합니다. 선생님은 무엇이 학생들로 하여금 선생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했는지, 무엇이 물리학 지리학 혹은 수학과 관련된 선생님의 생각을 파악하는 걸 방해했는지 알아내야만 한다고. (발명품 111)
3.
원효는 이제야말로 완전히 자유로워졌습니다. 천민들이 사는 소와 부곡으로 거침없이 갈 수가 있었어요. 그들을 구제하러 간 것이 아니에요. 중생이라는 것은 본래 없습니다. 시비심을 일으키는 내 마음이 중생심이고 중생심을 일으키는 그 순간 내가 바로 중생이지요. 그들은 중생이 아니라 본래 부처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구제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 배우러 가는 거에요. 그래서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기 위해 그곳으로 갔습니다. 예전에는 '그들은 마땅히 구제 받아야 할 중생이고 나는 그들을 구제해야 하는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꺼림칙해서 가지 않았지만, 이제는 용기를 내서 그들을 구제하러 내가 그곳으로 간다.' 이렇게 생각해서 간 것이 절에서의 불목하니 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구제할 중생이 본래 없는 거에요. 그래서 이번이야말로 거침없이 천민들이 사는 그 곳으로 갔습니다. 그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과 더불어 노닐고 그들한테서 배우려고요. (지금 여기 172)
[원효는 선생님이 아니라 연구자가 된다 '안다고 하는 교사가 알고자 하는 연구자가 되도록 하라!']
4.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중생의 종류, 즉 알로 나는 것, 태로 나는 것, 습기로 나는 것, 화하여 나는 것, 빛이 있는 것, 빛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 생각이 없는 것,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닌 것을 내가 다 완전한 열반에 들게 제도하리라. 이와 같이 한량이 없고 수가 없고 가없는 중생을 제도하되 실로 제도를 받은 자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이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 <금강경>
[선생님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포기하고 자신도 아는 것이 없다는 의식을 가지고 수업을 들어간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5.
이때 필요한 것은 남에게 베풀면서도 베푼다는 마음을 내지 않은 겁니다. <금강경>에 "보살은 일체 중생을 구제하되,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이 없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보살이 중생을 구한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괴로움이 생기고, 괴로움이 생긴다면 보살이라 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인생수업 251)
6.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모른다. 우리는 모른다. 때문에 알아가는 과정이다. 모른다, 연구, 이 자세가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