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구게2

욕망과 탐욕 vs 큰 만족감

T1000.0 2019. 6. 6. 22:49
1.
나는 욕망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욕망들은 긍정적입니다. 행복을 위한 욕망, 이것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입니다. 평화를 위한 욕망, 그리고 세상을 더 조화롭고 인간애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려는 욕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욕망들은 매우 쓸모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지점부터는 욕망은 이성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대게 문제를 일으키지요. 난 가끔 백화점에 들르곤 합니다. 난 백화점 구경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곳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물건들을 볼 때마다 내 안에 욕망이 싹트기 시작하고, 먼저 이런 충동이 생깁니다. '그래, 난 이것을 갖고 싶어, 저것도 필요해.' 그러고 나면 두 번째 생각이 떠오르면서 난 마음속으로 이렇게 묻습니다. '아, 정말로 이것이 내게 필요할까?' 그 대답은 언제나 '노'입니다. 만일 당신이 그 첫번째 욕망을 따른다면, 다시말해 최초의 충동에 따른다면 얼마 안 가 당신의 주머니는 텅텅 비어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음식, 옷, 집을 원하는 것은 그런 것들과는 다른 차원의 욕망이며, 훨씬 더 합당한 욕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때로는 어떤 사회나 환경에 사는가에 따라 사람의 욕망이 지나친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차가 있으면 일상 생활에 도움을 주는 선진국에서 살고 있다면, 당신이 차를 갖고 싶어하는 건 결코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차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는 인도의 가난한 마을에 살면서도 당신은 차를 원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설령 당신이 차를 살 돈이 있더라도 차를 갖고 나면 결국 문제가 생깁니다. 이웃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더 잘사는 나라에 살면서 현재 갖고 있는 차 대신 더 비싼 차를 갖기 원한다면, 그것도 똑같은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 하지만 충분히 차를 살 만한 형편이 되기 때문에 더 비싼 차를 구입했는데, 왜 그것이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군요. 이웃보다 비싼 차를 갖는 것이 이웃 사람들에게 문제가 될진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질투심 같은 걸 느낄 수있겠지요. 하지만 새 차는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겐 만족과 기쁨을 주지 않을까요?


- 아닙니다. 자기 만족만으론 그 욕망이나 행동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살인자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엔 만족감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그 행동을 정당화시켜주진 않습니다. 모든 부도덕한 행위들, 이를테면 거짓말, 도둑직, 성범죄 같은 것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그 순간엔 만족을 느낍니다. 어떤 욕망이나 행동이 긍정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것이 그 순간에 당신에게 만족을 주는가가 아닙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가져오는 결과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에 있습니다.
당신이 더 비싼 걸 갖고 싶어하는 경우에, 그것이 단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당신은 마침내 자신이 가질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를 것입니다. 언젠가는 현실에 부딪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한계에 부딪쳤을 때, 당신은 모든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지고 말겠지요, 그런 욕망을 따라가면 그 위험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2.
그런 식의 지나친 욕망은 결국엔 탐욕으로 발전하다고 난 생각합니다. 탐욕이란 기대가 지나쳐 생긴 욕망입니다. 잘 살펴보면 탐욕은 결국엔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주고 많은 혼란과 문제를 일으킵니다. 탐욕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가지려는 욕망에서 탐욕이 생기지만, 그것을 가진다고 탐욕을 만족시킬 순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마음은 끝없는 욕심으로 변해 결국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입니다.
사람은 만족을 얻기 위해 탐욕을 갖지만, 뜻밖에도 바라는 것을 얻은 뒤에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탐욕의 흥미로운 점입니다. 탐욕의 반대는 무욕이 아니라 만족입니다. 당신이 큰 만족감을 갖고 있다면, 어떤 것을 소유하는가 아닌가는 문제가 안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당신은 변함없이 만족할 수 있습니다.
<행복론 33>                

"온갖 빛깔과 모양의 꽃들과 파란 새싹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부처님의 좋은 법문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이건 정말 큰 행복입니다. 봄에 향긋한 꽃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것, 갖가지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 부드럽고 딱딱하고, 거칠고 매끄러운 온갖 것들을 감촉할 수 있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다리가 있어서 산에 오를 수 있고, 두 팔이 있어서 음식을 자기 손으로 떠 넣을 수 있다는 것, 이게 얼마나 큰 행복[큰 만족감]인가요?"


T.
1)욕망이 과도해 탐욕이 되지 않도록 알아차리고, 2)환경과 여건에 준해 욕망이 과도한지 판단하고, 3)단순한 만족보다 그 결과가 긍정적인지 가늠하며, 4)탐욕과 반대되는 큰 만족감의 힘 안에서 욕망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

*나는 큰 만족감을 욕구의 충족으로서의 자기만족의 보다 큰 만족이 아니라 철학적 성찰의 결과로서 이해한다. 큰 만족감은 이를테면 겸손, 검소, 순수로 표현된다.

니체는, 자기 자신이 체험했기 때문에 한 철학자의 생애를 신비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철학자는 금욕적인 덕목들-겸손, 검소, 순수-을 독점하여, 그것들을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실제로는 거의 금욕적이지 않은 목적들에 사용한다. 철학자는 그것들을 자신의 독특함의 표현으로 삼는다. 철학자에게서 그것들은 도덕적 목적들도, 또 다른 삶을 위한 종교적 수단들도 아니며, 오히려 철학 그 자체의 <결과들>이다. 철학자에게는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겸손, 검소, 순수는 이제 아주 풍부하고 넘쳐흐르는 삶, 능력으로 충만한 삶의 결과들이 되어, 사유를 정복하고 다른 모든 본능을 자신에게 종속시킨다.-이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자연Nature이라고 부르던 것이다: 욕구에 기초해서, 즉 수단과 목적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이 아니라, 생산, 생산성, 능력에 기초에서, 즉 원인과 결과에 따라서 영위되는 삶. 겸손, 검소, 순수 이것들은 그[철학자]에게는 현자가 되는 방식이고, 자신의 신체를 지나치게 오만하고 지나치게 사치스러우며 지나치게 육감적인 원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신전으로 만드는 방식이다.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