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환상
1. 욕망하는 대상은 의식의 환상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체가 욕망하는 원인들의 질서를 모른다. 다만 그 결과만을 알아차린다.(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욕망하는 대상이 욕망의 목적인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원인들을 모르는 무지의 자리에 그 결과를 원인으로 전도시킨다.(전도몽상)
때문에 사람들이 욕망하는 대상이 욕망의 원인이라는 목적인적인 생각은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이다.
사람들이 욕망의 대상을 소유하거나 성취하고도 결국 공허한 것은 그것이 환상이기 때문이다. 환상은 붙잡을 수가 없다. 소유할 수가 없다. 얻을 수가 없다. (이무소득고)
2. 꿈처럼 보라.
우리는 구조적으로 눈을 뜨고 꿈을 꾼다.
우리의 신경체계가 펼쳐보이는 대상을 나와 독립적인 존재로 체험한다. 때문에 이를 있는 그대로 보면 꿈처럼, 환상처럼 본다. 독립적인 존재로 체험하는 것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존재가 아님을 성찰하는 이중보기, 중도의 스텐스가 요구된다.
중도의 스텐스는 환상을 떠나지 않으면서 환상을 떠난다. 꿈 속에 있으면서 꿈에서 깨어있다.
떠나지 않는 여행의 즐거움, 지금 여기.
3. 욕망의 목적은 욕망이다.
욕망은 욕망할 뿐, 다른 목적이 없다.
욕망은 인간의 본질이며, 생명력이다.
욕망이 욕망이 목적일때 인간은 최대의 생명력을 발휘한다. 춤추기가 춤추기의 목적일 때 가장 즐겁다.
공부가 공부의 목적일 때 최대의 효과를 발휘한다.
욕망하라! 태양의 목적이 태양인 것처럼.
포크너 작가의 의무는 최선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해 낸 후에 남아 있는 의무는 그 어떤 방법이든 마음대로 처리해도 괜찮습니다. 나는 글을 쓰는 데 너무 바빠서 대중들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습니다. 나에겐 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궁금해 할 만한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누군가가 내 작품 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내 작품에 대해서는 내 자신의 기준만 충족시키면 됩니다. 즉 내 작품을 읽으면서 <성 앙트완의 유혹>이나 구약 성경을 읽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지 시험해 봅니다. 이 두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치 하늘을 나는 새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듯이 말입니다.
포크너 만약 그가 일류 작가라면 그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한 일류 작가가 아닌 사람에게는 어느 것 하나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이런 문제는 일류 작가가 아닌 사람에게는 해당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실내 풀장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렸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