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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내재하는 기쁨

T1000.0 2022. 7. 13. 23:42

사제의 가장 최근 모습은 <쾌락>,<죽음>,<현실>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가진 정신분석가로 나타나고 있다. 분명 정신분석은 욕망이 출산이나 생식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정신분석의 현대성이었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본질적인 부분은 그대로 고수했다. 그것은 욕망에 결핍이라는 부정적 법칙을, 쾌락이라는 외적 규칙을, 환상이라는 초월적 이상을 새겨 넣는 새로운 수단을 발견했다. 마조히즘에 대한 해석을 예로 들어보자. 정신분석이 우스꽝스러운 죽음 충동을 내세우지 않을 때라도 정신분석은 마조히스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쾌락을 추구하며, 오직 고통과 굴욕이 깊은 불안을 완화시키거나 몰아내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이야기가 아니다. 마조히스트의 고통은 그가 치러야만 하는 대가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쾌락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욕망이 외적 척도인 쾌락과 맺고 있는 사이비 관계를 부인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인 것이다. 쾌락은 결코 우회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쾌락은 긍정적 욕망의 연속적인 과정을 중단시키기 때문에 최대한 지연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즉 마치 자기 자신에 의해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것처럼 보이는, 욕망에 내재하는 기쁨이 존재한다. 그 기쁨은 어떠한 결핍도, 어떠한 불가능성도 내포하지 않으며 쾌락으로 측정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쾌락의 강렬함들을 분배하고 이것들이 불안이나 치욕이나 좌책감으로 인해 침해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 이 기쁨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마조히스트는 하나의 기관없는 몸체를 구성해서 욕망의 고른판을 뽑아내기 위한 수단으로 고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조히즘과는 다른, 게다가 훨씬 더 나은 수단과 절차가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이 이러한 절차가 접합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천개의 고원 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