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내재성의 사유
'흔들리는 것은 깃발이 아니라 마음이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욕망하는 대상에 욕망하는 실체가 없다. 가령 '예쁜 신발에 예쁨이 없다.'
예쁜 신발은 내가 보기에 예쁜 것인데,
예쁨을 본다는 건 내 안의 감각이 욕망한 것이다.
욕망은 내 안에 내재하는 과정이다.
예쁜 신발을 욕망하는 감각은 결여나 결핍과는 아무 상관이 없으며 욕망을 충족시키는 쾌락 등의 외적 계기와도 무관하다. 욕망의 내재성은 충만한 자기만족이며, 기쁨이며, 나머지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신발 자체에는 아무 얻을 것이 없다.
쾌락은 내 안에서 만들고 생산하는 욕망의 과정을 중단시킨다. 쾌락은 욕망의 과정이 중단되기를 유혹한다. 예컨대 쾌락은 부정입학 같은 것이다. 대학에 가고 싶은 과도한 욕망 때문에 부정을 저질렀다고 변명하나 실상은 욕망의 내재적 과정을 중단시킨 결과다. "욕망에 내재하는 기쁨은 어떠한 결핍도, 어떠한 불가능성도 내포하지 않으며, 쾌락으로도 측정할 수도 없다."
욕망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본다는 것이 내가 보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자각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밖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 내가 보는 것이 밖에 있는 것이다. 밖은 모를 뿐이다. 흔히 불교를 포함해 종교는 욕망을 터부시하고, 애물단지로 전락시킨다. 정신분석은 욕망을 결여와 결핍으로 내몬다. 온갖 오해와 편견과 저주에도 욕망의 내재성은 우리를 지탱하고 있다.
T.
1.
우리는 잘못 알고 있는 무지로 인해 괴로움을 겪는다.
나는 욕망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무지로 인해 고통받는다고 생각한다. 이점을 설득력 있게 말하고 싶지만 잘 안된다.
다만 할 뿐이다.
2.
가령 하기싫은 것을 해야할 때, 해야하는 자유를 선택하는 것은 내 보기에 욕망의 내재적 과정이 중단되지 않는 것이다. 하기 싫은 욕구에 따라 (해야할 때), 하지 않는 자유를 선택하는 건 욕망을 중단시키는 쾌락에 끌려가는 셈이다. 욕망에 내재하는 기쁨은 쾌락으로도 측정할 수 없다. 경험적으로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기쁨의윤리학 #오직기쁨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