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유목민 수적 조직

T1000.0 2019. 12. 24. 20:48

1.
칭기스칸이 사람들을 조직하는 방식은 확실히 다릅니다. 10개의 가족을 묶어서 10호대를 만들고, 각각의 10호대에 번호를 붙입니다. 10호대 10개를 묶어서 100호대를 만들고, 또 각각의 100호대마다 번호를 부여합니다. 마찬가지로 1000호대가 구성됩니다. 물론 묶이는 최소단위가 가족이기 때문에 혈통과 무관하진 않지만, 그것은 최초의 단위에서만 그렇고 가족들 간의 관계는 이렇게 번호를 따라 묶이면서 수적 조직의 체제로 재구성되는 거지요. 각각의 10호대에는 그것을 이끄는 지휘자가 10호장으로 선임되고, 100호대와 100호대 역시 마찬가지지요. 그루쎄에 따르면 1000호장 이상은 모두 '귀족'들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유목이라는 삶의 방식과 긴밀히 결부된 조직방식입니다. 유목을 하니 영토적인 방식으로 고정된 조직은 불가능합니다. 혈통 역시 유목 생활에서 필요한 유동성과 기동성에 부합하지 못하고, 더구나 사람수가 많아지고 관계가 복잡해지면 제대로 기능하지 어렵습니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이고 자연발생적인 단위인 가족 내지 가구를 묶어서 번호를 붙여 조직하고 관리하는 거지요. 그러면 이동을 하든 멈추든, 전쟁을 하든 일상생활을 하든, 관계의 일정한 지속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겠습니까?

2.

이는 군대가 국가장치에 의해 영유되고, 법적 형식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긴 하지만, 발생적으로 전쟁기계를 모델로 하고 있다느 점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전쟁은 영토화/탈영토화로 진행되기에, 군대가 영토에 고정되어서는 전쟁을, 더구나 공격전을 수행할 수 없습니다. 이점이 경찰과 다르지요. 경찰은 기본적으로 영토적 조직이고, 영토에 고정되어 영토를 관리합니다. 물론 군대도 국가장치의 일부인 한, 영토적 성격을 부여받습니다. 각각의 사단이나 대대의 일정한 영토적 위치가 대응되어 주어지지요. 하지만 경찰 조직은 영토를 떠너선 작동할 수 없지만 ,군대는 영토를 벗어나도 아무런 문제없이 작동합니다. 그래서 경찰은 쿠데타를 할 수 없지만, 군대는 쿠데타를 기존 국가권력에 대한 공격을 수행할 수 있는 거지요.

3.
물론 칭기스칸의 그유 명한 10호대, 100호대, 1000호대는 전쟁에 매우 적합한 조직어었지만, 단지 전쟁을 위해 편성된 것만은 아니었지요. 그것은 초원 전체를 계속 옳겨 다니며 살아야 하는 삶의 방식, 그래서 어떤 땅에 대한 영토적 소유로 편성할 없는 그런 삶의 방식이 일상적으로 짜여지는 조직이었던 겁니다. 자유롭게 이동하면서도 생활의 '안정성'이나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는 조직이었던 거지요. (노마디즘2 395)

4.
유목민 조직에서 10호대, 100호대 등 각각에 붙인 번호는 단지 각호대의 이름에 불과합니다. 축구선수의 등번호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이런 숫자는 더하거나 빼는 게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차례로 배열하는 것도 무의미합니다. 반대로 이는 무언가 익숙한 것을 상기시키는 기호와 반대로 숫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을 빼고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호란 점에서 '반-의미적'기호지요. 암호-이 또한 전쟁기계와 매우 긴밀한 관계가 있지요-가 이런 수로 만들어진다는 건 잘 알고 계시죠? 10호, 100호를 세는 경우에도, 그것은 수를 세지만, 세어지는 각각의 '호'들은, 어떤 단일한 척도에 의해 비교되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동질적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세어진 숫자의 크기가 같은지 다른지를 비교하고 계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거기서 숫자는 가구나 부대의 움직임 자체를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지도'를 놓고 장수들이 세는 숫자들은 초원이라는 공간을 움직이는 것 자체를 뜻합니다. (3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