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rgram

이중보기

T1000.0 2023. 6. 11. 10:08


한편으로 보고, 한편으로 본다는 것을 본다.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안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나는 어떻게 보는가?
내가 보는 실재는 있는 그대로의 실재인가?
내 신체에서 본다는 것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흔들리는 것은 깃발이 아니라 마음이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깨닫기가 어렵다.

T.
#이중보기 #약견제상비상 #환상처럼보기

1.
"처음에는 분리를 체험합니다. 이러한 체험은 결국엔 연결됨의 통찰로 바뀝니다. 물론 나는 내가 서술하고 있는 대상의 일부가 아닙니다. 여기 탁자 위에 있는 유리잔을 가리키는 경우, 나는 그 유리잔의 일부가 아닙니다. 하지만 유리잔을 구분해 내는 것은 나와 관계되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그것을 서술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그 구분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또는 그 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아무도 이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환경으로부터 특화되어 있고 분리되어 있는 물질적인 실체 또는 관념적인 실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뚜라나, 있음에서 함으로 47)

2.
이중보기는 설명하자면 처음 분리의 체험에서 연결됨의 통찰을 보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예쁘다. 따로 얻을 것이 없다."

3.
내 생각에, 위대한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내가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탐구한다. 고흐는 말한다. "내가 하는 것은 어쩌면 환상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훨씬 더 정확하게 실재를 환기시킨다."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는 훨씬 더 정확하게 실재를 환기시킨다. 위대한 고흐는 그 모든 것을 그림으로 보여준다.#환상처럼보기

"내가 보기에 반 고흐는 가장 위대한 화가였습니다. 그는 리얼리티를 묘사하는 데 전혀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가장 단순한 대상을 다룰 때조차 말입니다. 그의 방법은 리얼리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단순한 리얼리즘보다 훨씬 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리얼리티를 다시 창조하는 작업이었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 화가의 잔인한 손 p98)

T2.
3. 그런 식의 이미지 변형이 작업 중에 자주 일어납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변형이 보다 긍정적으로 일어나기를 늘 바랍니다. 지금은 삽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전적으로 비논리적인 것으로부터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매우 구체적인 대상을 다루길 원합니다. 나는 초상화 같은 대단히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 그림은 사람의 초상화일 테지만, 분석하려 들면 그 이미지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거나 알아보기가 매우 힘들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분석을 매우 피곤하게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정말이지 전적으로 우연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연이라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형태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죠. 최근에 어떤 사람의 머리를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분석해 보면 눈구멍과 코, 입을 구성하는 것은 눈, 코, 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형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윤곽선 사이를 오가는 물감이 내가 그리고자 하는 그 사람과의 유사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나는 잠시 멈추었고 내가 원하는 바에 보다 더 근접한 것을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날 작업을 더 진행하여 보다 통렬하고 나의 바람에 더욱 근접하게 만들고자 노력했지요. 그러고는 이미지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소위 구상과 추상 사이의 일종의 줄타기 곡예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는 추상으로부터 전개되어 나갈 테지만 실상 추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보다 격렬하고도 통렬하게 구상을 신경계로 불러오려는 시도입니다. (101)

T.

구상과 추상 사이의 줄타기 곡예, 중도. 이미지는 추상으로부터 전개되어 나갈 테지만 실상 추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보다 격렬하고도 통렬하게 구상을 신경계로 불러오려는 시도입니다.

나라면 보여주기와 말하기 사이의 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