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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론적 사유의 미신

T1000.0 2022. 1. 24. 06:44

그녀는 어지간히도 고민하다가 한가운데보다 조금 아래쪽의 카드를 빼냈고 나는 맨 위의 카드를 골랐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어떤 카드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어디서 빼내건 가치의 차이 따위는 없다. 게다가 나와 그녀는 이 게임에 걸고 있는 감정이 전혀 다르다. 이런 말을 하면 그녀가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번에는 이기든 지든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었다. 만일 집중력이나 의지의 차이로 승부가 결정된다는 설정을 신께서 이 세상을 만들어두었다면 틀림없이 그녀의 승리였다.
아마 그녀는 말할 것이다. 꼭 그렇지만도 않기 때문에 재미있는 거라고.
동시에 카드를 뒤집었고, 그녀는 진심으로 억울한 표정이었다.
"으윽, 이건 실수야."
그녀는 자신의 낙담이 도망쳐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침대 이불을 꽉 움겨쥐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이겨버린 나는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내 시선을 깨닫고는 낙담을 어딘가로 휙 던져버리고 만면에 웃음이 번졌다.
"에이, 별수 없지! 세상이 원래 이런 거야! 그래서 재미있는 거라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