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놀자, 그것은 현자에게 어울린다
스피노자, <에티카> 4부 정리 45.
주석 : 나는 조소(이것이 악이라는 것을 나는 계1에서 말했다)와 웃음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인정한다. 왜냐하면 웃음과 익살은 순수한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그것들은 그 자체로 선이다(정리 41에 의해). 즐거워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살벌하고 슬픈 미신뿐이다. 어찌하여 우울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배고픔과 갈증을 면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는 말인가?
나의 이유와 명심하고 있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신도, 또 질투심이 강한 사람 이외의 어떠한 인간도 나의 무능력과 불행을 기뻐하지 않으며, 또한 우리의 눈물, 탄식, 두려움, 그리고 그 외의 무력한 정신의 표지인 이런 종류의 것들을 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우리는 보다 큰 기쁨으로 자극받아 변화될수록 그 만큼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한다. 즉 우리는 그만큼 더 큰 신적 본성을 필연적으로 나누어 갖는다. 그러므로 사물들을 이용하여 그것들을 가능한 한 즐기는 것은(물론 넌더리가 날 정도까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즐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자에게 어울린다. 말하건대, 알맞게 요리된 맛좋은 음식과 음료, 향기, 녹색 식물의 아름다움, 장식, 음악, 스포츠, 연극,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고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종류의 다른 것으로 자신을 상쾌하게 하고 원기를 북돋우는 것은 현자에게 어울린다. 왜냐하면 인간의 신체는 본성을 달리하는 매우 많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부분들은, 몸 천체가 그것의 본성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똑같이 유능하게 될 수 있도록, 따라서 정신도 많은 것을 동시에 인식하는 일에 똑같이 유능하게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의 새로운 영양분을 끊임없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생활방식은 우리의 원칙과 그리고 일반적인 풍습과도 가장 잘 일치한다. 따라서 모든 생활방식 중에서, 이것이 가장 좋은 것이며, 모든 점에서 권장할 만하다. 이것에 대해서 이보다 더 명료하게 또는 더 자세하게 다룰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