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성품 없음의 해법
1.
하지만 부처님은 그 모든 구분에 정해진 기준이나 실체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인연이 어떻게 일어나느냐에 따라 그것은 선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악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인연에 상관없이 하나로 고정되어 불변하는 성품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2.
내 생각과 관념을 떠난 눈으로 넓고 길게 본다면 행위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해 관계나 가치관, 관념이나 상황에 따라 그 모습이 선이 되기도 하고 악이 되기도 합니다.
3.
이것은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김유신도 계백도 다 훌륭한 장군입니다. 당시 신라 입장에서 보면 계백이, 백제 입장에서 보면 김유신이 악인이었지만 지금 우리의 눈에는 두 사람 모두 조국과 역사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위인입니다.
4.
그렇게 본래 정해진 성품이 없음을 알게 되면, 인류는 오랜 반목과 갈등을 풀어내고 화해와 평화를 향해 한걸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이 사람은 은혜로운 사람이고 저 사람은 철천지원수다, 이렇게 고정불변한 사실인 양 구별해서 취급하지만 사실 그것은 다 자기의 이해관계와 입장에 따라 제 눈에 비친 이미지에 불과합니다. 본래 좋고 나쁜 본질이 없는 실상을 보게 되면 마음속에 묵은 번뇌와 괴로움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환희를 만나게 됩니다.
5.
자기 생각에 빠져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 들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상대가 옳다, 잘했다고 생각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가 게임 중독에 빠지고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남편이 술독에 빠져 사는데 무조건 잘했다고 칭찬할 수는 없습니다.
6.
그러나 사람의 행위에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원인과 조건의 흐름이 있고, 그 흐름 뒤에는 또 그 이전부터 이어져 온 업의 흐름이 있습니다. 소나무가 절벽 위 바위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기까지는 일정한 조건과 주변 상황과의 상호작용이 있었듯이 사람의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행동은 오래전부터 형성되어 온 일정한 조건과 주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 이전부터 쌓아온 업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7.
우선 지금 일어난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내 주관과 시비를 내려놓고, 이미 일어난 일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피고 인정할 때 진실의 문이 열립니다. 그 사실이 내 도덕적 기준에 합당한지 아닌지는 그다음 일입니다. 인정하는 것이 먼저고 합당함을 살피는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8.
이 순서를 뒤집어서 이미 일어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잣대에 맞춰 상대를 바라보는 데에서 세상의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되면 나도 마음이 상하고 상대도 상처를 받게 됩니다. 이것이 전도몽상이 빚는 우리 현실의 고달픔입니다. 하지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살피고 인정하면 내 주관과는 전혀 다른 객관적 세계가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제야 비로서 문제 해결의 방법이 생깁니다. (금강경 강의 309~311)
9.
내 인기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향한 탐욕스러운 욕구에 사로잡혀 있는 문화에서는, 그리고 예상 가능한 결과들을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산출할 방법을 창출할 목적으로 모든 것의 실천적인 수행을 위해 압력을 가하는 문화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능률 지향적인 사고를 진작시키는 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작업은 이렇게 일원 우주적으로 기능하는 인간공학 방법이 절대로 그리고 어떠한 상황 아래에서도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근본적인 불확실성의 영역에서 다른 인간과 마주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오직 존재의 형식을 시도하고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함께 약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입니다. 언젠가 - 우리가 치료사들이라고 가정한다면 - 환자는 변모되는 것을 느낄 것이며,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다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함으로 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