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그럼 당신은 작품이 개인의 손에 있든 미술관에 있든 전혀 개의치 않습니까?
네, 신경 쓰지 않아요. 그 작품들은 내 손에서 떠나갔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습니다. 내 작품이 반드시 누군가의 눈에 보여야 한다든가, 감상되어야 한다는 것은 나의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그건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내 작품을 좋아하면 기쁩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프란시스 베이컨 대담,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p227)
다른 작가들은 누가 자신의 그림을 구입하는지 그리고 그 작품이 어디로 갈지에 대해 걱정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습니다. 공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고 신경도 쓰지 않아요. 그렇지만 예를 들어 사람들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구입하여 불태운다든가해서 작품을 파괴해 버린다면 화가 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를 위해서입니다. 내가 죽을 때 내 작품 중 무언가가 남아 있게 된다면 가장 좋은 이미지가 남아 있기를 바라기 때문에 화가 날 겁니다.
왜 그렇죠?
단순한 허영심 때문입니다. 사람은 결국 죽을 존재이기에 그것은 결코 사람이 알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작품이 이왕 살아남는다면 가장 좋은 작품이 남길 바랍니다.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 대담, 나는 왜 정육점의 고기가 아닌가 226)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의 작품이 보여야 한다는 것에 조금은 신경을 쓴다는 얘기가 됩니다.
내가 신경을 쓴다고 할 때에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관심에서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내가 만든 이미지 중 일부는 내게 일종의 잠재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이미지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데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논리적으로 따져 본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조차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작품이 좋은지 나쁜지를 놓고 사는 동안 안절부절못하는 사람들은 그 답에 대해 결코 알지 못할 테고, 나 역시 그 어떤 것도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만이 유일하고도 훌륭한 비평가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에서 마지막 2행 연구는 그가 죽고 나서 한참 뒤에도 이 시구들은 여전히 읽힐 것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맞습니다. (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