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사랑 [당연한 자기 일]
세 형제가 있습니다.
큰아이는 심부름을 하기 싫어합니다.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살살 달래도 말을 듣지 않아서 결국 매를 들고 야단을 쳐야만 심부름을 합니다.
둘째도 심부름하는 걸 싫어하기는 마찬가지지만 맛있는 걸 사주겟다는 말로 달래면 꼭 사줘야 된다는 다짐을 몇 번씩 하고 나서 심부름을 갑니다.
그런데 셋째는 형들과는 다릅니다. 특별히 야단을 치거나 먹을 것으로 꾀지 않아도 단번에 예! 하고 다녀옵니다. 엄마를 도와드리는 일이니 당연히 자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첫째가 심부름을 갔다 와서 보니 심부름을 하지 않은 동생들도 매를 맞거나 꾸중을 듣지 않는 겁니다. 그걸 본 첫째는 '이럴 줄 알았다면 나도 가지 말걸. 엄마한테 속았다'하고 후회하고 억울해합니다.
둘째가 심부름을 다녀와서 군것질을 하다 보니 심부름을 다녀오지 않은 다른 형제들도 같은 걸 먹고 있습니다. 그러자 둘째 역시 '그럴 줄 알았으면 심부름하지 말걸. 괜히 나만 혼자 고생했잖아'하고 억울하다고 투덜댑니다.
2.
큰아이의 모습은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용하는 신앙을 바유합니다. 나쁜 짓을 하면 벌 받는다, 나를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 이런 말에 겁을 먹고 벌 받지 않으려고 착한 일을 하고 지옥 가지 않으려고 엎드려 비는 사람입니다. 혹시라도 지옥이라는 게 없다면 이런 사람은 아마 억울하다고 아우성칠 겁니다.
둘째는 인간의 욕심을 이용하는 신앙을 비유합니다. 돈을 많이 바치면 복 받고 극락에 간다는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 그만한 욕심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 역시 만약 극락세계가 없다면 억울하다고 아우성칠 겁니다.
그러나 셋째는 엄마가 매를 든다 해도 맞을 일이 없고, 상을 준다면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천당이 있든 없든, 지옥이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지옥이 있다 해도 갈 일이 없고, 천당이 있다면 가는 것이 당연하고, 아무것도 없다 해도 당연히 제 할 일을 했을 뿐이니 아쉬울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이 보살의 길입니다. 보살은 그렇게 바라는 마음도 탐하는 마음도 갖지 않습니다. (금강경 강의 446)
T.
어머니를 도와주는 일이니 당연한 나의 일이다. 당연한 나의 일이 바로 사랑이다. 당연한 나의 일이니 당연한 나의 책임이 있고 당연한 사랑이 있다. 당연한 무주상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