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스님의 <법성게>

한 치도 제 모습을 버리지 않고

T1000.0 2021. 1. 25. 20:55

하나하나의 시간이 그대로 십세의 전체 시간이 되면서도 하나하나는 자기의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서까래가 집의 전체를 이루는 총상이지만 서까래 모습으로서 총상인 것과 같습니다. 한 순간의 시간이 도는 시간을 담고 있다고 해서 뒤죽박죽된 시간이 아니라 자기 시간 그대로 뚜렷하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한 그루의 나무라도 그것이 존재하게 된 것은 우주볍계가 그 나무가 존재할 수 있는 인연 조건을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우주법계가 한그루의 나무속에 그 인연의 힘을 그대로 보내기 때문에 한 그루 나무이면서도 우주법계의 전체가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무의 모습을 버리고서 우주법계의 기운을 나툰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화엄세계의 부처님을 비로자나 부처님이라고 하지만 그 부처님의 얼굴은 중생의 수만큼 많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있는 시간과 공간을 여의지 않고도 온 세계에 두루 나툰다고 이야기하는 화엄의 가르침도 여기에 그 까닭이 있습니다.
나뭇잎은 나뭇잎의 모습대로 비로자나 부처님이 되어 부처님의 세계를 나투고, 나비는 나비대로 제 모습을 가지면서 비로자나 부처님입니다. 온 세계의 사물과 중생들이 한 치도 제 모습을 버리지 않고, 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부처와 부처로서 빛을 나투고 있으며 이 빛은서로가 서로에게 부처가 되게 하고 있습니다. (법성게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