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1000.0 2012. 12. 11. 05:51

사법계의 중생은 배를 타고 바다로 놀러 나갔다가 파도에 휩쓸려서 물에 빠진 사람입니다. 재미있게 놀아보려다가 재미는 커녕 죽게 생겼으니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놀러 나왔던 걸 후회합니다. 행복해지려고 학교를 다니고, 행복해지려고 친구를 사귀고, 행복해지려고 결혼을 해놓고 도리어 그것으로 말미암아 고통에 허우적대는 중생의 모습입니다.
이법계의 사람은 물에 빠질가봐 아예 바다로 나가지 않습니다. 결혼을 안 하겠다, 사업을 안 하겠다, 자식도 안 낳겠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돌아앉은 사람입니다.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혼자 가만히 있으면 괴로워할 일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법계를 세간이라 하면, 이법계를 출세간이라고 합니다.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이사무에법계의 사람은 큰 배를 만들어서 바다로 나갑니다. 파도와 바람의 성질을 연구하고 거기에 맞게 배를 움직이기 때문에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큰 배가 필요하고 기술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경계가 있습니다.
이와 달리 사사무애법계의 사람은 육지에 있어야 한다거나 바다에 나가야 한다는 분별이 없습니다. 바다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경계도 없습니다. 바다에 나갈 일이 있으면 나가고, 나갈 일이 없으면 안 나감녀 그만입니다. 큰 배가 있으면 큰 배를 타고 나가고, 작은 배가 있으면 작은 배를 타고 나갑니다. 작은 배를 타고 나갔다가 바다에 빠지게 되면 허우적대거나 살려달라고 아우성치지 않고 물에 빠니 김에 바다 밑에서 진주조개를 주워 올라옵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이런 대로 행하고 저런 일이 있으면 저런 대로 행합니다. 이것이 <화엄경>에서 보여주는 보살의 마지막 경지, 인연 따라 몸을 나투는 화작化作의 경지입니다.

모든 것이 인연을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인연에 어긋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물은 언제 어느 때라도 담기는 그릇에 따라서 그 모양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세상살이도 그처럼 조건과 시간과 공간에 맞게 인연을 따를 때 거기에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각주:1]  

 

T1000.0 : 화작化作은 '되기'이다. 흉내가 아닌 되기. 어떤 한 모습을 고집하지 않고 마주치는 인연을 따라 모양대로 되기. 물이 그 모델인데, 물은 담기는 인연 마다, 즉 그릇마다 모양을 바꿔 그릇 모양이 되기에 어디에도 걸림이 없다. 물이 꽁꽁 얼어 한 모습만을 이룰때 보다 큰 그릇, 또는 보다 작은 그릇에는 담기지 못하는 것을 볼때 인연따라 이루는 진정한 자유를 배울 수 있다. 물을 보라. 물은 스스로의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을 따라 이룬다. 이는 물이 공空하기 때문이다. 물은 고정된 실체가 없어 잡을 수가 없고 그렇지만 잡을 수 없다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닌, 공空. 무실무허無實無虛. 

 
 

  1. 법륜스님, <금강경 강의> p320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