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확실성의 유혹 환상처럼 보기

T1000.0 2021. 10. 3. 21:50

우리는 보통 확실한 세계, 논란의 여지없이 정확히 지각할 수 있는 세계 안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세계 안에서 사물이란 오로지 우리에게 보이는 그대로 존재할 뿐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확실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문화권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적 방식이다.
(앎의 나무 22)

T.

확실성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위해 환상처럼 본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2.

어떤 사람의 진정한 지혜는 영속적인 자기 고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역량에, (특정한 상황들을 정확하게 지각해내는 것을 방해하는) 이러저러한 신념들을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자발성에 있다는 것이 내 견해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늘 자기 자신을 관찰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만 하는가를 지시하고 있는 궁극적 진리에 인도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p54

* 도가도 비상도 ( 도라는 도는 이미 도가 아니다 )
* 일자불설(一字不說 ) - 한 법도 설한바 없다


3.

내가 볼 때 핵심 문제는 기대하지 못한 어떤 것이 드러났을 때 우리가 우리의 확실성들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망스러운 체험들이 꼭 깊은 좌절과 분노로 연결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체험들이 정말 극적으로 새로운 전망들을 열어젖힐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대들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깨닫고, 너무 흥분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잡기로 결정하는 거죠. (있음에서 함으로 69)

4.

나는 죽음에 대한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나는 사물들에 대한 집착을 그만두었고 내 자신을 그것들과 부당하게 동일시했던 것을 그만두었습니다. 죽음과 마주침으로써 나는 내가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더 성찰적이게 되었고 덜 교조적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나 자신을 '모든 세속적인 유대를 초월하는 영광스런 존재'로 서술하고 싶다는 것을 의미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체험은 너무 강렬했고 그래서 나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순간적임을, 오직 변이일 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옹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붙잡고 있을 수 없습니다. (181)

T.

진리마저도 환상처럼 보라. 하물며 진리 아닌 것이랴.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따라서 여래는 항상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나의 설법을 비유컨대 강을 건너는 뗏목으로 알고 강을 건넜으면 응당 뗏목을 버려야 할 것이다. 진리마저도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진리 아닌 것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금강경 6 정신회유분>

T.

*환상처럼 본다는 건, 단지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