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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언어는 유감스러우면서도 유익합니다

T1000.0 2022. 3. 12. 22:15

나는 관찰자로 작동함으로써 관찰자의 작동들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언어 속에서 살아감으로써 언어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요컨대 우리 자신의 바깥에서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것에 우리가 접근할 길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함으로 42)

정말이지 우리는 어떤 것이 주어져 있고 존재한다는 바로 그러한 관념이, 그리고 어떤 실재나 어떤 종류의 진리에 준거한다는 것이 불가피하게 언어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매우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진리 또는 실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건 모두 언어의 이용가능성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것은 오직 언어를 이용할 수 있을 때에만 서술이 가능해지고, 또 언어에 의한 구분 행위를 통해서만 드러나게 됩니다. 심지어 우리가 순수의식의 상태에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명상 과정에서 조차, 우리는 그와 같은 상태의 성찰이 언어 없이는 달성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44)

언어는 감옥이 아닙니다. 언어는 하나의 존재 형식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이자 방법입니다. '언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라는 단순한 표현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다른 공간이, 즉 언어를 넘어서는 [초월하는] 어떤 공간이 - 설령 그곳에 결코 다다를 수 없다 할지라도 - 존재한다고 믿도록 만듭니다. 나는 그렇게 가정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언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언어를 넘어서 존재하는 어떤 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뜻합니다. 정말이지, 그와 비교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생각해 보세요. '만일 모든 것이 우주의 일부라면, 우리는 도대체 그 우주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대답은 자명합니다. '내가 가는 곳이 모두 우주이다.' 우리는 분리할 수 없이 더불어 움직입니다. (45)

분명 선생님은 지금 혼자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이 인터뷰의 체험이 선생님이 유아론으로 빠져들지 않도록 해주는 건가요?

바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우리가 우리와 독립적인 어떤 것을 구분해 낼 수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있음'의 체험을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내가 볼 때 그 대답은 언어가 더불어 살기의 방식이자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가? 내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들이다.' 다음 질문은 이렇습니다. '누가 인간들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인간들이란 인간의 더불어 살아가기의 과정에서 구분되는, 그처럼 특별한 실체들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순환적인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나에게 인간은 존재적인 또는 존재론적인 실체, 즉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닙니다.(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