뫎연구

2.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않는 대신 섭동하는

T1000.0 2020. 3. 11. 21:12

푀르크젠 그렇지만 우리는, 지시명령적으로 간섭할 수 없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남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조작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충분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문제되고 있는 그 체계들을 아직 이해하지 못합니다. 외관상 모든 지도자들, 정신공학 의사들, 그리고 성공한 판매원들은 생명체계 - 다른 사람들 - 의 행위를 매우 효과적인 방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보면,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의 불가능성은 지식의 문제이고, 이해의 어려움들의 문제입니다.

마뚜라나 물론 사람들은 그들이 특별한 능력들과 통찰력들을 가지고 있고, 섭동을 투입으로 변형시킬 수 있고 마침내는 지시명령적 상호작용을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잘못된 확신은 어떤 식으로건, 모든 종류의 체계의 '구조적 결정성'을 무효로 할 수 있는 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두 체계들은 그것들의 구조들의 수준에서만 서로 마주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의 특유한 구조들 - 구성요소들과 이러한 구성요소들 사이의 관계들 - 이 이러한 마주침으로 인해 서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결정합니다. 지도자들과 성공한 판매원들이 그들의 조작활동들을 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를 분석할 때 우리는 즉각 그들이 언제나 그들이 섭동하는 체계들의 구조들에 대한 특수한 이해를 갖고 작동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들은 그 체계들의 속성들, 예컨대 인간들의 성격적 특성들, 그들의 욕망들 및 필요들을 활용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통찰들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들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는 어떤 행위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푀르크젠 이러한 통찰은 위험하지 않습니까? 만일 우리가 체계의 논리를 파악한다면, 조작이라는 생각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체계적 통찰은 훨씬 더 효과적인 통제와 지배의 기초가 되니까요.

마뚜라나 나는 그러한 견해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나는 체계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그들의 지식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조작적 방식으로 행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행동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이러한 행동들의 기저에 놓여 있는 감정들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체계의 이해에 기반을 둔 행동들은 그와 달리, 특수한 지혜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조작을 특유한 종류의 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오히려 어떤 특수한 활동에 형상을 부여하는 특정한 감정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작을 행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오직 그 자신의 이해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작하는 것은 기만하고 거짓말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을 거짓말의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함으로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