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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것은 그러면 정말 밋밋한 인식의 동기뿐이군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단지 기능함이 문제가 될 거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기능함 자체도 우리가 환영하고 기뻐할 만한 기적의 연속으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비틀거리고 넘어지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넘어지지 않으면 그것도 우리가 함께 샴페인을 떠뜨릴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요. 한 번 더 강조하건대 저는 기본적으로 진리와 거짓, 주관성과 객관성에 대한 전체 논의로부터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런 범주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방해하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신앙고백하도록 강요하는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그런 개념들을 정말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개념들은 그냥 언급되기만 해도, 거절되기만 해도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발명품 48)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이 떠오르는군요. '어떤 명제 P와 그것의 부정인 non-P를 말한다는 것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맞는 간단한 비유를 하나 들까요? 왕을 몰아내려는 혁명가들은 흔히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왕을 끌어 내려라!"라고 외치는 아쉬운 오류를 범합니다. 이것은 분명 왕을 위한 선전구호입니다. 그래서 왕은 사실 자신의 적대자들에게 "너희들이 그렇게 나를 자주 언급하고 내 이름 부르기를 그만 두지 않으니 고맙군"하고 감사해야 하죠. 만약 제가 어떤 사람을, 어떤 이념 혹은 어떤 이상을 크고 분명하게 부정하면 그런 것들과의 최종적인 단절이 행해지지 않은 것이지요. 부정된 현상은 다시 등장하게 되고 부정으로부터 나와서 새로이 관심의 중심부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당신은 혁명가인데 진리에 대한 생각을 논의 밖으로 추방함으로써 진리문제를 철저히 종식시키려고 하는 그런 혁명가이군요.
나쁘지 않은 표현이군요. 오스트리아 저널리스트들 사이에 통용되는 공식이 그에 맞습니다. 전혀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람을 가장 잘 없애 버릴 수 있다는 것인데 '거론되지 않도록 해라!'라고 합니다. 만약 어떤 정치인을 망쳐버리고자 한다면 그 사람이 맺고 있는 다른 여자들과의 혼외관계에 대해서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언급만으로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의식 속에 불러 오게 되며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참 단정한 사람이군!"이라고 말할지도 모르니까요. 보다 효과적인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고 날씨나 일기예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정치인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진리에 대한 생각을 사라지게 해야 하고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끝장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론되지 않도록 해라!' (발명품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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