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힘들게[또는 화나게] 하는 것은 바로 나다. 그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를 정상으로 봐주지 못하는 내가 나를 힘들게 한다. 그렇다면 정말 나는 옳고, 그는 그른가? 예를 들어 아들이 며칠전에 선물받은 고급잠바를 잃어버리고 왔다. 습관적으로 잃어버리는 아들에게 화가 났다. 잃어버린 것은 잘못이고 그것을 탓하는 나는 옳지 않은가? 그런데 뭐 잃어버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한다면 화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화가 나는 원인이 그에게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무엇을 잃어버리는 것은 정말 잘못인가? 혹 그 잠바가 고급잠바가 아니고 싸구려 잠바라도 화가 났을까? 즉 나에게는 고급잠바라는 이미지가, 그 광고 효과가 나에게 새겨져 갖고싶고 없어지면 화가나도록 만든 이미지에 사로잡힌..
선의에 대하여 비록 선의로 한 행동이라도 결과가 나쁠때가 있다. 잘할려고 한 것인데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는 생활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일을 겪고 반성하다보면 내심 나서지 말자, 간섭하지 말자라는 행동방침을 가지게 된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선 늘 '남에 인생에 간섭하지 마라'한다. 귀담아들을 이야기다. 사실 가족 간에도 간섭을 하다 불행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가령 부모가 자녀의 인생에 크게 간섭하면 오히려 자녀를 망치는 사례는 줄곧 본다. 물론 부모는 선의다. 무엇이 문제인가? 선의를 가지는 게 잘못이 아니고 또 간섭이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다. 이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이 장자에 나온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느냐? 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
집착에 관하여 혹은 무념: “관심 vs 욕심” 돈에 대한 집착이란? 돈에 집착하지 마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가령 어디까지가 집착인가? 집착이란 무엇인가? 집착은 타자를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마음은 욕심이다. 왜 그런가? 타자를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은 나의 영역 밖의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타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타자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고 속박하게 되면 그에 따른 반작용이 생긴다. 욕심은 자기의 능력 이상을 탐내거나 누리려는 마음이다. 욕심을 억지로 성취하면 반드시 과보를 받게 된다. 욕심을 성취하는 것은 곧 불행을 초래한다. 그러니 집착하지 마라는 자기 뜻대로 하고 싶은 욕심을 버려라 하는 말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타자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묘 故常無慾 以觀其妙 常有慾以觀其徼 고상무욕 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此兩者 同出而異名 비양자 동출이명이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도는 흐르는 물을 잡을 수 없는 것처럼 딱잘라 도라고 말할 수 없다. 도는 항상 그대로, 변함이 없는, 동일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지어 이름 부르지만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처럼 이름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무명은 이름이 없는, 언어 이전의, 언어 너머의 차원인 무차별의 세계다. 무차별의 세계는 천지의 시작이다. 유명은 이름이 있는, 하나하나의 다름을 보는 차별의 세계다. 차별의 세계는 만물이 소생하는 땅, 어머니다. 그러므로 무욕하면, 이름에 집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