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숙고한 진정한 자유는 요컨대 정합성이다. 둘 이상의 선택지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여지가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선택지에서 선택할 여지는 정합성에 의거해야 한다. 가령 목욕탕에서 나와 옷 벗을 자유를 선택하는 것은 맞지 않다. 마찬가지로 목욕탕에 옷입고 들어갈 자유를 선택하는 것도 맞지 않다. 인연을 따라 선택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불수자성 수연성" 2. 흔히 욕구대로 하는 것을 자유롭다 생각하기 쉬우나 역설적으로 욕구대로 하는 것은 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욕구로부터 자유로움을 정리하면, 1.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주저없이 한다. 망설이는 것은 바보다.] 2.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 [하고 싶어도 하지 않는다.] 3. 하기 싫은 것을 것을 해야할 때 [..
무릇 형상 있는 것은 다 허망하니 거룩한 부처님의 모습도 예외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공한 이치에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남편이 나쁜 사람이라고 원망하며 지냈다면 나쁘다고 할 만한 실체가 없는 줄 깨쳐야 하고, 공부 안 하는 아이가 문제라고 걱정해 왔다면 문제라는 게 본래 없읆을 알아야 합니다.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기준, 문제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다 내 생각일 뿐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 괴로움은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본래 나쁜 것도 없고 본래 좋은 것도 없는 줄을 알면, 좋고 나쁘다는 상으로 생긴 온갖 시비와 갈등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내 인생이 행복해집니다. (금강경 강의 103)
중생은 자기 뜻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괴로워합니다. 남편이 돈을 못 벌어서,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부모가 이혼을 해서, 친구가 배신을 해서 등등 갖가지 이유를 대며 괴로워합니다. 이는 세상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괴롭다는 뜻이지요. 내가 괴로운 이유가 하나같이 다 다른 사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나보다 힘이 센 존재,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단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존재, 즉 신이라는 존재에 매달려 제 뜻을 이루게 해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금강경 강의 56)
현실의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면 치밀한 계산명세서를 주고받는 거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사랑이란 이름 아래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손익계산을 하며 살아가지요. 상대적으로 그러한 계산이 적은 것이 부모자식 간의 관계지만 부모자식 간도 본질적으로 보면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내면에선 끊임없이 계산하며 살기 때문에 번뇌와 고통의 근본 뿌리조차 보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살아가지요. 이렇다보니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 역시 일종의 투자로 변질해 버립니다. 마치 부동산을 사두는 마음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어떤 보상을 기대합니다. 요즘에는 과거처럼 노후를 의탁하려는 기대 심리를 갖는 부모가 그다지 않지만 그래도 자식에 대한 기대는 여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대에 못미치면 '내가 너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라..
지능 테스트들이 이끌어내고 진단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포섭의 정도입니다. 내 주장은, 우리가 우리의 가능성들과 우리의 근본적인 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로 그럴 수 있는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감정들이라는 것입니다.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작은 완전성에서 큰 완전성으로의 이행하는 또는 그.반대로 이행하는 감정이 결정한다.] 지배적인 감정은 결정적인 방식으로 지적인 행위를 변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겁을 먹었기 때문에 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울하거나 또는 흥미가 다른 데 있기 때문에 따분해진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편견들과 가능성들에서 드러나는 엄청난 변이의 폭이 사람들이 성장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출현합니다. 그들은 어렸을 때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