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합이 위 영공태자의 스승이 되자 거백옥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기 한 사람이 있는데 그의 천성이 열악하여 그와 더불어 무모한 짓을 하다가는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며, 그와 더불어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면 내 몸이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그의 지혜는 남의 잘못을 알아내기에 뛰어나고,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기에는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거백옥이 대답하였다. "훌륭하십니다. 그 질문이여! 경계하고 삼가서 당신이 몸가짐을 올바로 해야 할 것입니다! 겉으로의 모습은 그와 친하고자 하느니만 못하고 속마음으로는 온화하게 하느니만 못합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나 두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가까이하되 그에게 끌려 들어가서는 안될 것이며, 온화하게 하되 그것이 겉으로..
1. 포정해우庖丁解牛 한 백정이 문혜왕을 위하여 소를 잡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닿는 곳이나, 어깨를 기대는 곳이나 발로 밟는 곳이나 무릎으로 누르는 곳은 푸덕푸덕 살과 뼈가 떨어졌다. 칼이 지나갈 때마다 설겅설겅 소리가 나는데 모두가 음률에 들어맞았다. 그의 동작은 상림의 춤과 같았으며, 그 절도는 경수의 절주에 들어맞았다. 문혜왕이 말하였다. “아, 훌륭하다! 재주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를 수가 있는가?” 백정이 칼을 놓고 대답하였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입니다. 이는 재주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란 모두 소뿐이었으나, 3년이 지나자 이미 소 전체의 모습은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헛되이 애를 써서 한쪽에 치우친 편견을 내세우면서 실은 모두가 하나임을 알지 못한다. 그것을 조삼(朝三)이라 한다. 조삼이란 무엇인가? 원숭이를 부리는 사람이 원숭이에게 상수리를 나누어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다."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그래서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다."하니까 원숭이들이 모두 좋아했다. 명칭(표현)도 내용(실질)도 변함이 없는데 기쁨과 노여움이 일게 되었다. [그것은 시비에 구애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시 자연 그대로의 커다란 긍정(肯定)에 몸을 맡기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聖人)은 시비를 조화시키고, 자연의 균형(天均)[즉 만물제동(萬物齊同)의 도리]에서 쉰다. 이러한 것을 양행(兩行;대립된 두 쪽이 다 순조롭게 뻗어 나가는 입장)이라고..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과 걱정과 탄식과 변덕과 고집스러움 및 경박함과 방탕함과 뽐냄과 허세 같은 사람의 마음이, 음악이 공간에서 생겨나고 버섯이 수증기로 말미암아 자라나는 것처럼, 밤낮으로 우리 앞에 서로 엇바퀴어 나타나지만, 그러나 그 싹이 튼 곳을 알지 못한다. 아아, 안타까워라! 아침 저녁으로 이것들이 나타남은 그 근원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그것들이 아니면 나도 존재할 수 없고, 내가 아니면 그것들도 의지할 곳이 없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또한 가까울 것이로되 그렇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혹 참된 주재자가 있을 법도 하지만 특별한 그 증거를 잡아낼 수는 없다. 그것의 작용에 대해서는 이미 믿고 있다 하더라도 그 형체는 볼 수가 없다. 그러한 실정은 존재하나 그..
"꿈 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던 자가 아침이 되어 울게 되는 수가 있다. 꿈 속에서 슬피 울던 자가 아침에는 즐거이 사냥을 나가기도 한다. 막 꿈을 꾸고 있을 때에는 그것이 꿈인 즐을 알지 못한다. 꿈 속에서 또 그 꿈을 점치기도 한다. 꿈을 깬 뒤에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또한 큰 깨어남이 있어야만 비로소 이 삶이 큰 꿈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버젓이 아는 체를 하여 임금이니 목동이니 하지만 고루한 일이다. 나는 그대와 더불어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대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역시 꿈인 것이다. 이러한 말을 사람들은 지극히 기묘하다고 할 것이다. 만세(萬世) 뒤에 위대한 성인을 한 번 만나서 그 뜻을 알게 된다 ..
정신과 마음을 통일하려고 수고를 하면서도 모든 것이 같음을 알지 못하는 것을 조삼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조삼'이라고 하는가? 옛날에 원숭이를 기르던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화를 냈다. 다시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명분이나 사실에 있어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기뻐하고 화내는 반응을 보인 것도 역시 그 때문이다. 그래서 성인은 모든 시비를 조화시켜 균형된 자연에 몸을 쉬는데, 이것을 일컬어 '양행(兩行)'이라 한다. 조삼모사나 조사모삼이나 같은 것이니, 어느 쪽을 한다해도 상관이 없다. 성인은 이를 잘 알아, 원숭이에게 조삼모사할 것을 결정하고, 원숭이들은 기뻐한다. 장자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