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간의 완전성, 가능성(운전, 비행, 멋진 컴퓨터 등)을 설명해 내려는 것, 그것은 인간의 희망사항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설명원리들은 문화적으로 조건 지워져 있으며 때로는 아주 다양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설명원리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으며 이런 설명 저런 설명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전기모터의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실재론자는 맥스웰의 원리를 이용할 겁니다. 그리고 주술사라면 설명되지 않는 것을 다루는 (대면하는) 방법을 이해했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당신이 (우리들이 가진 가설들이 명백히 기능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자연의 운행비밀을 끄집어냈음을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라고) 제게 물으면 저는 완벽히 설명 가능한 것을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바람, 놀라움을 만족스럽게 제거해 주는 그런 바람처럼 보인다고 답하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기적과 알 수 없는 것이 더 이상 없는 그런 세상에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행하는 설명의 시도들에 따른 결과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은 제 생각에 대답이 아닙니다. 당신은 다만 제 질문의 함의들을 테마로 삼고서 그것들을 짜 맞추고 있을 뿐 답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되묻고 싶군요, 어떤 답을 듣고 싶어 하는지. 어떤 답을 당신은 받아들이려 합니까? 그리고 제 설명의 어떤 것이 당신을 즐겁게 하나요? 어떤 가설이 잘 기능한다는 것이 진리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어쩌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신앙고백과 같은 것을 저는 거부하겠습니다. 저의 공식은 이렇습니다. 기능한다는 것은 기능한다는 것에 대한 증거이다. 제가 왜 기능한다는 것을 그런 우스꽝스런 '진리'라는 글자와 동일하게 취급해야 합니까? 왜요? 옳기 위해서요? 다른 사람의 머리를 때리기 위해서요? (발명품 46)
'푀르스터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께 춤을 (0) | 2020.02.16 |
---|---|
거론되지 않도록 해라 (0) | 2020.02.14 |
내재적 연기 (0) | 2020.02.12 |
있는 그대로? (0) | 2020.02.11 |
기분이 좋아지는 문장 (0) | 2020.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