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 때문에 '엣부터 흔들림 없는 삼'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앞서 말한 중도의 자리에 앉아 있음입니다. 중도란 공이자 연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물이면서 파도고 파도이면서 물이고, 물이면서 얼음이고 얼음이면서 물인 것 등의 접면으로 비유했습닏. 이는 모든 것은 어느 한 못브으로 고정될 수 없고 그 임녀에 변화의 주체도 없으며 다만 전체의 관계에서만이 저마다의 못브으로 나투고 있느 연기실상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유가 다 사라질 때, 바꿔말하면 미세망상의 업식을 다 떨쳐 버렸을 때 법계등류의 지智를 되찾게 됩니다. 이것을 증지라고 하여 해오解悟와 구별하고 있습니다. 해오란 학습으로 깨달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법성게 252)
무상이란 관계 속의 변화가 한없는 것을 말하고 이 변화는 제때제때 앎으로 빛을 나투니, 시절인연에 따라 피는 꽃이 곧 우주법계의 장엄이고 부처님의 품이고 다라니의 총체입니다. 아울러 이 꽃은 자신의 빛으로 우주법계를 장엄하여 열며 낱낱이 부처가 되게 하면서 다라니의 총체가 되게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선사 스님께서는 "모든 불보살이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셨습니다. 우주법계가 불보살의 나툼이며 그것은 나를 존재하게 하는 뿌리라는 것입니다. 아울러 나는 우주법계의 부처님을 존재하게 하는 뿌리이며 나와 법계는 공인 접면에서 서로가 서로를 부처로서 존재하게 하고 있습니다. (법성게 240)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연기법을 나타내는 게송 곧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에서 이것은 저것에서 독립될 수 없으며 저것도 이것에서 독립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것이면서 저것과의 하나된 장에서만 이것이며 저것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눌 수 없는 이것과 저것의 장이 곧 법계입니다. 그러면서도 이것은 이것으로서 저것을 꿰뚫고 저것은 저것으로서 이것ㅇ르 꿰뚫고 있기 때문에, 이것 그대로 법계이고 저것 그대로 법계입니니다. 곧 관계의 장에서 저것으로의 법계의 모습과 이것으로서의 법계의 모습이 겹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이것일 수 있고 저것이 저것일 수 있는 것은, 이것과 저것이 그 자체로서는 공이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되 공으로 이것이고 저것이되 공으로 저것이므로, 이 관계에서는 ..
한 생각 일어남이 우주법계의 일어남이요 한 생각 사라짐이 우주법계의 사라짐입니다. 물론 겹쳐진 다른 모습의 한 없는 우주 모두가 한 생각과 함께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중중무진법계라고 하는 것이지 중중무진법계 가운데 한 우주법계가 생각의 일어남 사라짐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드라망의 한 구슬이 중중무진으로 펼쳐진 인드라망 구슬 전체를 나타내고 있듯이 한 생각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 생각이 연기법계를 세우는 것이지 주어진 연기법계에서 한 생각이 물거품처러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이 한 생각이 연기법계의 총상이면서 별상 드응로 육상六相 모두가 그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한 생각이 우주법계의 연기실상을 모두 드러내 보이고 있으므로 총지摠持라고 하며 다라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라..
어른 스님께서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하실 때 가끔씩 묻습니다."이것을 주장자라고 해도 맞지 않고 아니라고 해도 맞지 않다. 그럼 이것을 무엇이라 해야 하겠는가?" 이것은 '주장자'라는 이름과 '주장자라는 이름이 가리키는 사물'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삶의 여실한 모습을 깊숙히 꿰뚫어 보는 지혜가 순간순간 살아 있는가를 점검라므누것입니다. 만일 주장자를 주장자라 한다면 이는 상견상견에 떨어지는 것이고, 주장자가 주장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단견단견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주장자이면서 주징자가 아니라고 해도 마지 않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도 맞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유,무,역유역무亦有亦無,비유비무非有非無의 주장을 부처님께서는 사견이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있고[有] 없는[無]것의 주어를 설정하고 그에 대해서 ..
쉬고 쉰 마음, 빈 마음에서 모두를 깨달음으로 있습니다. 이 마음 밖에 깨달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빈 마음, 분득 일어나는 마음, 작용만으로 전체르 이루는 마음이 불성이면서 법계의 온전한 생명의 열림입니다. (법성게 221) T. 무아, 실체는 없는데 작용은 있는 그 자리의 알아차림이 무심. 빈 마음의 작용. 과거의 마음, 현재의 마음, 미래의 마음에도 머물지 않는 빈 마음의 작용에 몸을 실을 때, 분별은 잡지도 못하고 흘러버리니, 잡을 수가 없다. 빈 마음의 이미지는 머물지 않는 마음, 인연을 마주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