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극에서 그것은 전쟁을 자신의 목표로 삼고 우주의 극한으로까지 연장될 수 있는 파괴의 선을 형성한다.......다른 한 극이 본질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전쟁기계가 무한히 낮은 '양'을 갖고, 그 목표를 전쟁이 아니라 창조적 탈주선을 긋고 매끄러운 공간을 구성하며, 그 공간 안에서 민중들의 운동을 구성할 때다. 이 다른 글에서 전쟁기계는 실제로 전쟁과 조우하지만, 그것은 보완적, 혹은 종합적 목표로서며, 이제 그것은 국가 및 국가에 의해 표현되는 세계적 공리계에 대항하도록 방향지어진 것이다."(천의고원2 208) 전쟁기계들은 이 극단적인 두 극 사이에 있고, 그런 만큼 다양한 양상을 표현하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다양성은 근본근본적으로 전쟁기계와 전쟁과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다..
야금술사가 국가장치에 포섭되는 것은 그들의 식략이나 기타 국가장치의 농업적 스톡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먹고살기 위해서'지요. 이는 저나 여러분들이 취직을 하련느 이유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그런 포섭과 연대를 근거로 야금술사의 삶의 방식이나 사유방식이 국가장치와 어떤 동형성을 갖는다고 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우리 자신의 문제로 생각해보아도 분명합니다. 반면 유목민과의 연대는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건 유목민이 본질적으로 스톡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광산에서 합류하는 대중의 흐름은 일시적이고 부분적입니다. 유목민과 야금술사 사이에는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합류의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그것은 방금 본 것처럼 흐름의 사유, 변형의 사유, 비유기적인 삶의..
1. 저자들이 기계적 계통에 대해 말하면서 사물성과 대비하여 '물질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금속성의 '질료적 흐름'입니다. 그것도, 그 안에 있는 각각의 기계적 계통도, 고유한 질료적 '결'을 갖습니다. 그래서 저자들은 장인 내지 야금술사란 질료적 흐름을 따르는 자고, 기계적 계통을 따르는 자, 다시 말해 질료적 결을 따르는 자라는 점에서 '이동하는 자' 내지 '순회자'라고 부릅니다. 2.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물질성'은 눈앞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의 '실재성'이라는 실재론적 개념이나 통속적 유뮬론의 '물질' 개념과 분명하게 구별되지만, 동시에 어떤 고유한 결을 갖기에 ,의식이나 정신, 주관 같은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외부성'을 표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저자들의 시도에서 새로..
하지만 이는 기존의 분류법과 전혀 다른 것으로, 일종의 감성에 따른 스피노자적 분류법이라고도 할 수 있고, 더 정확하게는 배치에 따른 기계들의 분류라고 할 수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이지만, 어떤 요소들도 배치 안에서는 무기가 됐다가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기계적 요소가 어떠한 계통에 속한다고 얘기를 할 때, 그것은 배치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지요. 다시 말해 배치에 따라 동일한 것이 다른 계통을 그리면서 분기될 수 있다는 거지요. 따라서 "진정한 발명품은 배치다"(천의 고원2 192)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마디즘2 434)
무기와 도구의 구별이 사실은 배치에 따른 거라고 했지요? 배치를 달리함에 따라 도구가 되거나, 그 반대가 가능해지지요. 1. 뒤에 보듯이 화기, 특히 대포 이래의 대규모 화기와 병기는 그것을 만들고 사용하기 위해 포획장치를 통한 대규모 스톡을 전제하는데, 바로 이 사실이 유목적 전쟁인의 패배를 규정했던 역사적 요인인 동시에, 전통적인 의미의 전쟁인이 대개는 국가장치에 포섭된 군인이 되는 방식으로만 존재하게 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국가장치와 쉽사리 동맹할 가능성을 형성하는 요인처럼 보입니다. 2. 이런 점에서 전쟁기계의 문제는 오히려 노동자나 농민 같은 존재가 전쟁기계를 재발명하는 것이 되거나, 혹은 전쟁기계 개념 자체가 새로운 차원에서 국가장치의 외부를 발명하는 문제로 변형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
"노동이 있는 곳에는 국가장치에 의한 포획행동과 문자에 의한 행동의 기호화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호-도구와 문자-노동조직의 기호 간엔느 친화성이 있다."(천의고원2 186) 반면 "무기는 보석류와 본질적 관계를 갖는다. 보석이나 장식은 무기의 감응을 표시하는 표현적 특질을 갖는다."(천의고원2 424)고 말합니다. 이처럼 무기와 결부된 표현인 보석 내지 '보검'은 기호처럼 의미화하는 표현형식을 갖지 않습니다. 다만 직접적으로 감응/포스을 표현할 뿐이지요.(노마디즘2 424)
1."배치는 정염적이다. 그것은 욕망의 조성이다. 욕망은 자연적 혹은 자생적 결정과는 무관하다. 배치하거나 배치된 욕망이 아닌 욕망은 없다. 배치의 합리성, 효율성은 그 배치가 활성화하는 정념들 없이는, 그것이 구성하는 만큼 그것을 구성하기도 하는 욕망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천의 고원2 185) 배치는 욕망의 배치 : 19세기 이전에 사랑은 결혼과 다른 것이어어서, 아내를 정부처럼 대하는 것은 아내에 대한 모욕이었고 아주 부도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면서 모든 셩욕과 사랑이 가족과 포개져야 한다는 관념과 태도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가족 밖에서의 사랑은 죄악시되지요.[왜 그리됐나 ? 궁금] 이는 17~18세기 궁정사회에서의 성과 사랑, 욕망의 배치와 전혀 다른 종류의 욕망의 ..
1. 먼저 노동은 중력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중력을 이기기 위한 것이고, 신체적, 정신적 저항을 견디며 하는 것이고, 따라서 신체를 잡아당기는 고통을 견뎌내며 하는 것입니다. 이겨도 다시 돌아오는 것, 다음날이면 동일하게 되돌아오는 것, 중력과 저항, 고통이 바로 그렇습니다. 반면 자유행동은 중력에서 벗어나 공간을 절대적으로 점유하는 것, 다시 말해 원하는 방향 어디로도 나아갈 수 있는('절대적 국지'의 개념을 잊지 않으셨지요?)것입니다. 중력을 받는 지적 노동이라면 당연히 전공, 실적, 이런 것과 관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지만, 자유행동은 전공과도 상관없고 '실적'과도 무관하게 자기의 문제의식이 뻗치는 곳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지요. 이런 점에서 중력을 받는 노동으로서의 공부공부와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