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과정을, 쾌락은 결과를,
1. 아솅보 당신은 실내 장식가였지요? 베이컨 네. 하지만 나는 그 일을 싫어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장식은 그림과 대립하죠. 정반대입니다. 나는 또한 장식적인 경향이 있는 그림을 혐오합니다. (p57) 아솅보 당신은 방금 사람들이 왜 당신의 작품을 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당신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것이 당신에게 상관이 있습니까. 혹은 없습니까? 베이컨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립니다.(p66) - 2 엄마든 아버지든, 혹은 사회라고 불리는 타자든 '그들'의 인정을 욕망하는 순간, 우리는 그들이 내가 해주었으면 ..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우리는 그것을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고 거기에 미쳐서 몰두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일을 잘하는 법이기도 하다. 좋아서 하는 것은 그 과정 자체가 좋기에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할 수 있고 평생을 계속 할 수 있으며, 또한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림이 좋아서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하기에, 화가로서 성공해서 명성을 얻는가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삶을 긍정하고, '삶을 사랑하는(Amor tati)' 길이다. 반면 그림을 좋아하지만 돈을 벌기 힘들거나 안정된 생활을 하기 힘들거라는 생각에서 포기하는 것, 음악을 좋아하지만 고시를 보는 게 남에게 더 인정받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고시를 택하는 것, 이는 '사람들이' 하지 말라..
2. "내가 저 집에 들어가면, 내가 백성이 되겠느냐 아니면 저 집이 궁궐이 되겠느냐." 신하들을 호령하는 왕의 언행에선 비범함이 느껴집니다. 여느 왕과는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는 이 왕의 포스는 어디서 나 올까요? 앞선 글에서 말한바대로 왕의 중도가 왕의 존엄을 드러냅니다. 이 왕은 궁궐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또한 백성의 집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즉 왕은 양극단을 상징하는 궁궐도, 여염집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은 하룻밤 거처로 여염집을 택 합니다. 이유인즉 왕은 주어진 시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선택을 하기 때문입니다. 풀어말하면 왕과 신하들의 눈앞에는 밤 늦은 시간과 민가라는 공간이 당도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왕은 그때그때마다 중심이 되는 중도로써 여염집을 택한 것입니다. 반면 에 신하들은..
1. 옛날에 어질고 현명한 왕이 있었다. 연일 국정에 몰두하던 왕이 모처럼 짬을 내 신화들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 아침 일찍 떠났다가 저녁에 환궁할 요량이었는데, 사냥에 심취한 나머지 미처 해가 기우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날이 너무 어두워 궁궐까지 갈 수가 없었다. 충직한 신하들은 얘가 탔다. 왕이 말했다. 저기, 저 민가에 하루 묵도록 하자. 신하들은 펄쩍 뛰며 두 팔을 내 저었다. 어떻게 전하께서 누추한 여염집에 들 수가 있겠느냐며, 밤길을 재촉해서라도 궁으 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왕이 말했다. "내가 저 집에 들어가면, 내가 백성이 되겠느냐 아니면 저 집이 궁궐이 되겠느냐." 왕의 존엄은, 저 왕의 비범한 포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왕의 '중도'에서 나온다. 집은 집일 ..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이야기를 보고 중도를 이렇게 이해했다. 산이 하나 있는데 이쪽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 보기에 산이 동쪽에 있으니 동산이라고 하고 저쪽 마을 사람들은 자기들 보기에 서쪽에 있으니 서산이라고 했다. 이 두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동산이다 서산이다라고 자기주장- 메추라기의 시야 -을 굽히지않고 싸우기까지 한다. 그런데 지나가는 나그네가 이를 보고 말하길 이 산은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번엔 싸우던 사람들이 나그네와 한판 붙는다. 아니 동산이면 동산이고 서산이면 서산이지 어떻게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냐며 산을 부정하는 것이냐며 쏘아붙인다. 허나 보라. 허공에서 보면 산은 그냥 거기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산은 동산도 아니고 서산도 아니지만 동산도 되고 서산도 되는 것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