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지 우리는 어떤 것이 주어져 있고 존재한다는 바로 그러한 관념이, 그리고 어떤 실재나 어떤 종류의 진리에 준거한다는 것이 불가피하게 언어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매우 명확히 해야 합니다. 그와 같은 진리 또는 실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건 모두 언어의 이용가능성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가정되는 것은 오직 언어를 이용할 수 있을 때에만 서술이 가능해지고, 또 언어에 의한 구분 행위를 통해서만 드러나게 됩니다. 심지어 우리가 순수의식의 상태에 옮겨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명상 과정에서 조차, 우리는 그와 같은 상태의 성찰이 언어 없이는 달성될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있음에서 함으로 44)
괴로움이 없고,두려움이 없는.
"수보리여!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는 복덕 또한 이와 같아서 가히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다. 수보리여! 보살은 응당히 가르친 바와 갈이 머물지니라."(금강경)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한 말을 듣지 않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빰을 때리거든 왼빰도 돌려 대어라. 너를 고소하여 속옷을 빼앗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 주어라. 누가 네게 억지로 오리를 가자 하거든 십리를 가 주어라. 네게 요구하는 사람에게 주고 꾸어 달라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말아라.
괴로움 속에 있어도, 마음은 사로잡히지 않는다.여여함을 본다, 평상심.
"왜냐하면 여래란 곧 모든 법이 여여하다는 뜻이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되 '여래께서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수보리여! 실로 법이 있어 부처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를 얻음이 아니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아뇩다라삼막삼보리는 이 가운데에 실다움도 없고 공허함도 없다. 이러한 까닭에 여래가 말하기를 '일체 법이 다 불법'이라고 하느니라. 수보리여! 일체 법은 곧 일체 법이 아니므로 이름이 일체 법이니라. 수보리여! 비유컨대 사람의 몸이 큰 것과 같다."(금강경 17 구경무아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