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볼때에 사랑과, 감정들의 힘을 다루는선생님의 성찰들은 언제나, 공정하지 못한 비약을 포함하는 것 같습니다. 자연과학의 사실들과 논증들로부터 실천 분야들에 적용되는 시적 서술들로, 거기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특징화에서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하는 특징화로, 인식론에서 윤리학으로 넘어가는 비약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야기를 바꾸고 있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생물학은 우리에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생물학자로서, 그리하여 과학자로서, 나는 누구에게도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줄 수 없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오해일 것입니다. 사실상, 어떤 것도 좋거나 나쁘지 않습니다. 사물들은 그저 사물들일 뿐입니다. 좋다 또는 나쁘다와 같은 평가들과 구분들이 발생하는 것은, 오로지 특정한..
내가 제안하는 바는 선생님들이 자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학생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생각, 학생들의 머릿속을 자신의 생각으로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포기하고 자신도 아는 것이 없다는 의식을 가지고 수업을 들어간다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선생님도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라는 금언에 기반 한 소크라테스식 무지의 태도를 취해야 해요. 근본적인 무지의 태도를 대변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비하면 이 정도만 해도 이미 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을 아직 모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식의 무지자는 뭐를 하나요?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무엇을 합니까? 사람들은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
이제 당신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당신에게는 어떤 법칙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을 드러내는 것이 문제군요. 그리고 당신은 그 사람들의 진술을 철저하게 그 사람 자신의 책임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고요. 괜찮은 해석이군요. 법칙을 생각한다는 것은 방해하는 (억제하는) 작용을 갖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법칙은 사물에 대한 단지 하나의 관점만을, 단지 하나의 가능한 길만을, 단지 하나의 구체적이고 허용된 행동방식만을 제공할 뿐입니다. 만약 법을 발명품으로 파악하게 되면 우리는 잘못된 행위를 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아니라 법을 말한 사람, 즉, 법을 발명한 사람들을 잠시나마 보게 됩니다. 그래서 법을 발명한 사람이 우리 지각의 중점에 놓이게 되고 그 사람이 자신의 진술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됩니다...
문제는 그런 이름표들이 상호이해와 상호 귀 기울임을 방해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그것이 구성주의라 불리건, 음주주의 혹은 갈채주의라 불리건, 어떤 철학적인 범주에, 아니면 다른 범주에 엮여 들어가건 그 귀결점은 사람들이 사물 자체를 너무 성급한 이름표로 수습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름표가 인간의 사유에 너무 강한 방향성을 부여해 버린다는 말입니까? 그 이상입니다. 이름표는 전체 사고를 말살시킵니다. 곧바로 클럽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그게 좌냐 우냐 상위 범주인가 아니면 하위 범주인가 혹은 차별화해야 하는가 하는 식으로 서로 다툽니다. 제 생각에 구성주의라는 이름은 (구성주의) 이면에 있는 사유의 세계에서는 아주 끔찍한 재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구성주의라고 불리는 것은 다만 실재의 당연성을 회의하는 하나의 회의..
저는 다른 핑계를 찾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당신이 저의 윤리적 명령을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논박은 모든 진술이 한정된 가치만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다수의 가능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뭔가를 택할 자유를 갖고 있고 결정할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사물을 이렇게 봐야 되고 저렇게 봐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행동해야 하고 저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하는 그런 절대적 진리는 없습니다. (발명품 57)
사람이란 원래 비관용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의 비관용성을 이용하는) 어떤 선동 자료들은 예를 들어, 폭력을 초래하는 극우적인 글들은 금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 금지 전략이 옳다고 믿는 당신에게 행운을 기원하고 싶군요. 제 생각에 그런 검열은 작동되지 않습니다. 다만 모든 것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지요. 제가 볼 때 네오나치식 이념의 불합리성은, 마찬가지로 확산될 가능성이 부여된, 다른 이념들에 의해서 드러내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당신은 선이나 참, 미 등이 계몽을 통해서 관철될 수 있다고 여깁니까? 당신은 이런 영역에 상당히 조예가 깊은 것 같군요. 그런데 무엇이 선이고 참이고 미인지 당신은 어떻게 알지요? 그러한 앎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요? 참과 거짓, ..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테제를 의심의 여지없이 도발로 받아들입니다. 몇해 전 어떤 기독교 주간지에 당신과의 인터뷰가 실렸지요. 그리고는 일련의 격앙된 독자편지가 있었고요. 많은 독자들이 진리이념과의 결별에 상처를 받았어요. 종교적 표상의 한 가운데에 그런 진리이념이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그들 중 한 명은 당신을 '위대한 분규자(분란, 혼돈울 불러오는 자)'라고 칭했습니다. 악마가 위대한 분규자의 역할을 한다는 성경표현이지요. 글쎄, 약간은 웃기게 들리네요. 물론 저는 악마에 대한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볼 때는 위대한 분규자가 악마가 아니라 위대한 획일주의자가 악마입니다. 악마는 다양한 견해를 동질화 시켜서 모두가 같은 것을 생각하고 믿고 행하게 만듭니다. 이게 원래 위험한 ..
제가 볼 때, 붙잡을 것을 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절대적인 것의 확실성은 그 자체로 위함한 것이어서 사람들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선택하는데 수반되는 책임의 문제를 사람들에게서 빼앗아버립니다. 저의 목적은 오히려 각자의 자기 책임과 개인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발로 서 있기를 원하고 각자의 개인적 관점을 신뢰하기를 원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생각, 자신의 표상, 자신의 말을 발전시키도록 돕는 겁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관찰능력을 고양하도록 자신의 눈과 귀를 사용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보고 듣고 말하는 법을 알려주는 도그마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혼자 춤추는 사람들로써 그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