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性偈(義湘祖師) 법성원융무이상 法性圓融無二相 법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이 없고 제법부동 본래적 諸法不動本來寂 모든 법은 움직이지 않고 본래 고요하니 무명무상절일체 無名無相絶一切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모든 것이 끊겨 증지소지비여경 證智所知非餘境 증지라야 아는 바이지 다른 경계 아니네 진성심심극미묘 眞性甚深極微妙 참된 성품은 깊고 깊으며 가장 미묘해 불수자성수연성 不守自性隨緣成 자성을 따르지 않고 인연따라 이루네. 일중일체다중일 一中一切多中一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으며 일즉일체다즉일 一卽一切多卽一 하나 그대로 모든 것이며 모든 것 그대로 하나이니 일미진중함시방 一微塵中含十方 한 티끌 속에 시방을 머금고 일체진중역여시 일체진중역여시 모든 티끌마다 또한 그러해 무량원겁즉일념 無..
나는 정말로 프로이트가 사물을 설명하는 방식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정신분석학에는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이 꽤 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고전적인 구분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이 회화에 관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모두 다루지는 않지만, 이성적인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형이상학적인 설명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세계는 신비의 영역이나 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것에 귀속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종류의 모든 설명들을 혐오하므로 그 사실은 내게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내가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예술가들이 갖고 있다고 믿었던 어떤 종류의 영감과도 관..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조건에 맞추어 나를 바꾸는 길이 있는가 하면, 나는 나대로 두고 내게 맞는 조건을 선택하는 길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길 가운데 어느 것이 좋고 나쁜가를 논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 어는 한쪽만을 선택하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어진 조건을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나를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고, 주변 조건은 바꿀 수 있지만 내 성향은 바꾸기가 어려운 형편이라면 일단 나에게 맞는 상황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적당한 길을 선택하면 됩니다. 연을 따라 인을 바꾸거나 인을 따라 연을 바꾸면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근원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경계에 처하더라도 과보가 일어나지 않으려면 인을 소멸시키면 됩니다. 인가 연이 결합하지 않으면 과는 ..
이 세상에 저절로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단지 내가 그 일의 원인을 모를 뿐입니다. 모든 일은 신의 뜻도 아니고 전생 때문도 아니고 우연히 일어난 일도 아닙니다. 그러니 내가 처한 상황이나 사건이 나와 관련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내가 마땅히 겪어야 하는 일이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공부의 시작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찾아서 제거해나가야 합니다. 나중에 참회만 하면 모든 일의 원인과 결과가 다 소멸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미 일어난 일의 원인과 결과는 참회한다고 바뀌거나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인연과의 법칙을 외면하고 억울해하고 원망만 하고 있다면 이 순간에도 미래의 고통이 되는 원인의 씨앗을..
부처님은 하려는 마음 없이 하고 되는 바 없이 되는 도리를 말씀하십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교화했지만 정작 이 법을 사람들에게 전해야겠다고 집착한 바 없이 널리 법을 설하여 중생을 제도합니다.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지요. 그래서 설법 전에 법을 청하는 청법이 있는 것입니다. 먼저 물어야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금강경 강의 412) 2. 내가 볼 때 문제는 이제, '어떤 식으로도 지배와 연루되지 않는 방식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매우 근본적인 종류의 존중을 증진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이 일관성을 지키고자 한다면,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생님의 생각에 동의하라고 강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배와 조작을 용인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어떻..
1. 사람들의 행복은 타인의 불행 위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입시에서 내 합격의 기쁨 뒤에는 남의 불합격이라는 불행이 있습니다. 교통사고가 나서 버스에 탄 사람이 다 죽었다는데 나만 혼자 팔이 부러져 살아남았다면 부처님의 가피르 입었다고 기뻐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아무도 다치지 않고 나만 혼자 팔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면 재수 없고 불운한 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똑같은 사고를 당했고 팔이 부러진 것도 똑같은데 이러한 행과 불행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2. 어처구니없게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불행해지는 만큼 행복을 느끼고, 다른 사람이 행복한 만큼 불행한 느낌에 빠지곤 합니다. 이렇게 내가 느끼는 행과 불행의 정도는 늘 타인의 행과 불행에 비교되고 기대어 있습니다. (..
1. 의 여래십대발원문 중 열 번째가 원아광도제중생입니다. 널리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원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원아분신변진찰, 내 몸이 먼지처럼 무수히 많은 온갖 모습으로 두루 나투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목마른 이에게는 물을 주고, 베고픈 이에게는 밥을 주고, 몸이 아픈 이에게는 약을 주고, 그렇게 중생의 요구에 수순할 때 비로소 걸림 없는 자유에 이르게 됩니다. 2. 함이 없는 행, 할 일 없는 도인이라는 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할 일이 없다고 하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논다는 뜻이 아닙니다.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상대에게, 말하자면 중생의 요구에 수순하여 행하는 경지입니다. 3. 좋은 의사는 환자가 오면 정서껏 진료합니다. 하루 종일 끊임 없이 환자가 찾아와도 짜증내거나 ..
여기에 죽비가 하나 있습니다. 죽비는 참선을 할 때 소리를 내 시작과 끝을 알리는 데 쓰는 도구입니다. 그것이 '죽비'라는 물건의 사용처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죽비가 뭐하는 물건인지 몰라 지팡이로 사용했다면 그때는 그것이 지팡이입니다. 등을 긁는 데 썼다면 그때는 등긁기입니다. 그런데 등 긁는 용도로 사용하는 걸 보면서도 그것이 등긁이가 아니라 죽비라고 고집하면 그것을 법집이라고 합니다. 또 반대로 그것이 죽비라는 걸 알게 된 뒤에도 이건 지팡이다. 등긁이다 고집한다면 그것은 아집입니다. 죽비가 네 동강 난 채로 길거리에 버려져 있는 걸 죽비를 아는 사람이 본다면 죽비가 부러져 있다고 말하겠지만, 죽비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것이 그저 부서진 나뭇조각일 뿐입니다. 정해진 법은 없습니다. 참선할 때 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