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觀은, 이렇게 인식되어진 것들로부터 자유스러워지는 것이 첫째입니다. 어떤 식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보는 것입니다. 그냥 보되 떡을 나누는 마음으로 봅니다. 어울리는 마음으로. 어울림에 가장 좋은 것이 뭐냐면 노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학교 교육을 한 이십 년 가까이 받다보니 놀 수 없게 됐습니다. 놀면서 배우는 게 안됐습니다. 배우는 것이 놀이가 되지 않으니까 짐이 됩니다. 그런 습성이 명상할 때도 그렇게 합니다. 뭣을 얻으려고. 그냥 그것이 재미있게 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 스스로 재미있도록 보는 것이, 그냥 재밌게 되는 것이 자재自在입니다. 자재를 보는 것입니다. 자재를 본다. 자재는 뭡니까. 법계가 지 인연 처를 만나 인연대로 흘러갑니다. 인연의 흐름을 내식으로 조정하려고 하면 놀이..
그러므로 마명 스님의 가르침을 학습한 수행자는 광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 마음 씀씀이 하나하나에 다 들어 있으며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깊이 믿고, 스스로의 마음을 잘 살펴 알아차리면서 마음 나눔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수행이 마음을 얻는 진여 법성의 공덕과 상응하는 실천이며 자비의 실천이 되겠지요. 소중한 삶이지만 집착으로 넘어가지 않아야 소중한 삶을 살 수 있고, 귀한 삶이지만 오만으로 넘어서지 않아야 삶이 귀하게 되지요. 마음 살핌이 이 경계를 넘어서지 않게 합니다. 살핌과 알아차림이 분명하지 못하거나 충분한 통찰로 무엇이 소중하고 귀한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헛된 것으로 귀하고 소중하고 귀한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헛된 것으로 귀하고 소중한 삶을 치장하느라 마음이 바빠지면 귀하고 소중한 자신의 ..
회향게에서 "법성과 같이[如法成]"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마명스님께서도 을 써서 얻게 되는 공덕이 있다면 "우주 법계의 진여공성이 온갖 생명들을 위하여 아무런 바람 없이 베풀고 있는 것과 같이[如法性]" 회향廻向하고 싶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룸'이면서도 그것이 법계의 '이룸'일 수밖에 없고, 이룸 또한 언제나 무상한 것이라 이루면서 비우게 하지요. 비운 나의 '이룸'을 법계의 '이룸으로 바꾸는 것이 법성과 같은 이룸입니다. 법성이 중생계를 이롭게 하는 회향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덕德이라는 뜻이 '마음을 얻음[得心]'이듯, 법계의 모두는 서로가 서로에게 비운 마음으로 맑고 따뜻한 기운을 나누면서 서로의 마음을 얻는 공덕으로 살 수 있습니다. 아무런 바람 없이 주는 마음 나눔이 ..
마음마다 법성의 공덕이 빛나는 알아차림으로 나타난 것인 줄 믿는 그 마음야말로 부처를 다 드러낸 마음입니다. '마음 비움'과 '마음 나눔'이 공덕인 줄 사무치게 아는 마음이 대승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며 자신에 대한 믿음이며 이웃에 대한 감사함이며 함께 소중하고 귀한 삶을 사는 바탕이 됩니다. 이와 같은 가르침을 소중히 간직하여 받아들이고 비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지 않고 비방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해칠 뿐만 아니라 이웃까지를 해치게 됩니다. 믿지 못하는 것은 자기 동일성의 독립된 실재가 이웃 없이도 존립할 수 있는 것처럼 사유되는 업식의 허위가 시대를 넘어 전달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차이를 드러내게 하는 이웃들에 의해서 '나'도 설 수 있고, 나의 내적인 차이에 의해서 생명활동과 인식이 이루어지고 있..
이와 같은 알아차림은 진여 법성의 공덕과 계합하는 것입니다. 알아차리는 마음이 진여 법성이 되는 것이지요. 수행으로 공덕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하는 마음이 법계의 무한한 공덕을 이루며, 이미 이루어진 공덕을 드러냅니다. 그렇기에 한이 없는 공덕을 얻는다고 합니다. 마음 하나하나가 법계의 마음이 되고, 법계가 된 마음이기에 쓰는 마음마다 법계의 공덕을 드러냅니다. 무엇을 갖는 것으로 나를 세우려는 마음을 비우지만, 비워진 마음자리에 법계의 생명활동인 온갖 공덕들이 하나하나 채워집니다. 이 마음은 비울수록 커지며 아무리 쓰더라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법계의 본성이 그렇습니다. 진여공성의 공덕이 모든 생명들의 마음에 담겨 있습니다. 법계의 공성에서 나타나는 공덕은 법계의 인연이며, 생명의 장이며, 생명들의..
어느 경전에서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마찬가지입니다. 손 안에 무언가를 감추어 두고 특별한 수행자에게 비밀스럽게 전해준 가르침은 없습니다. 열반의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당신의 가르침을 하나도 숨긴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승의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다만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대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자 그와 같은 가르침이 된 것처럼 있다가 시대의 요구에 의해서 다시 훤히 드러나게 됐다고는 할 수 있습니다. 마명 스님께서 말씀하신 '믿음'은 스스로와 이웃 생명들을 서로서로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대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삶의 본래 모습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특별히 그와 같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귀하고 소중한 삶이라는 뜻입니다. T1000.0 : 부처님은 가르침을..
마음이 중생 세계를 만들고 부처 세계를 만드는 것이면서 그 세계가 다시 마음이 되니, 주체인 마음이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하나 다른 모습 그대로가 온전히 마음이 되어 주관도 객관도 따로 있을 수 없기에 마음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마음이 온갖 세계가 될 수 있으며 온갖 세계가 마음이 됩니다. 세계를 보는 것이 마음이 아니라 보이는 그 세계가 마음이면서 보는 마음과 보인 마음으로 나뉜 것이지요. 뜻을 오로지하여 경계에 흔들려 어지럽던 마음이 사라지면, 마음마다 부처님의 세계가 열리고 서방극락세계가 펼쳐집니다. 마음 씀 하나가 중생 세계와 부처세계를 넘나드는 길이 되니 마음이야말로 경전의 으뜸이 됩니다. 그래서 언어문자로 표현된 경전을 강을 건너는 뗏목이라고 했겠지요. T10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