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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것이 우리가 보는 것을 보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내가 옳다는 생각과 '내가 보기에' 옳은 것은 완전히 다르다. 내가 보기에 옳은 것이지, 옳은 것이 없다. 고로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다.

사람들은 내가 보고 듣는 것은,
그것이 거기에 있어
내가 보고 듣는 것이라고 확정한다. 내가 옳다!
이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꾸로 내가 보고 듣는 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옳다!는 생각은 전도몽상이다. <금강경>은 이 점을 강조한다.
"만약 색신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우리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다 함은, 내 생각을 주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정작 내려놓는 것은 내가 옳다는 전도된 생각이다. "이렇게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면 무엇이 진실이겠는가?"
우리가 보는 것을 우리가 보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내가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은 불가능하다. 내가 옳다는 주장은 색신으로써 부처를 구하고 음성으로써 부처를 구하는 사도의 주장이다.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한다. 내가 보는 것을 내가 보는 것으로 여실히 알때,
일상에서 내가 옳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내가 보기에 옳은 것이지 옳다가 아님을, 이점을 알아차린다. 하여,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는다,
원리 전도몽상遠離 顚倒夢想.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내가 보기에 옳은 것을 행할 때, 내가 보기에 옳은 것이란 나의 선택을 의미한다. 무엇이 옳은지는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나는 결정할 수 없는 문제를 내 삶의 주체로써 내 보기에 옳은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가, 그 책임이 나에게 있음을 자각한다.

내가 옳다는 생각은 주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체의 망상이다.

"객관성이란, 관찰하기가 주체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체의 망상이다. 객관성에 호소하는 것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인기가 있는 것이다." -하인츠 폰 푀르스터,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내가 보기에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은, 내가 옳다는 생각으로 다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생각은 옳고 그름으로 편을 가른다.
내가 옳기 때문에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난다. 그러나 내가 옳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내가 보기에' 옳은 것임을 알아차리면 옳고 그름으로 편가르지 않는다.
내 생각과 다를 뿐이다. 서로 보는 기준이 다를 뿐, 너도 옳고
나도 옳다. 내가 옳다는 것을 내려놓으므로 너도 옳다를 이해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이해와 인정과 더불어 나는 내가 보기에 옳은 것을 행한다. 그 방법을 모색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내 생각으로 초대한다. 어떤 강요나 복종의 요구 없이 다만 초대할 뿐이다.
원리 전도몽상, 즉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므로
화낼 일이 없다.


<초대>
정말 화가 안나는지 나의 신체로 체험해보자.

T.

내가 옳다는 생각을 환상처럼보라. 환상처럼 본다는 건, 내 생각에(내가 옳다) 집착하지 않는다. 또 집착하지 않는 것도 않는다.(내 생각에 옳다) 양극단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중도
내가 옳다는 존재론적 생각과 내가 보기에 옳다는 유아론적 생각 사이에서, 양극단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중심을 잡는 중도.

중도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체험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 실재를 체험한다. 그러나 이 체험이 외부의 실재를 내가 그대로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중도는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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