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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1도 없는 분노

T1000.0 2023. 3. 1. 00:26

스피노자, <에티카> 4부 정리 63
계: 이성에서 생기는 욕망에 의하여 우리는 직접적으로 선을 추구하며, 간접적으로 악을 피한다.

증명: 왜냐하면 이성에서 생기는 욕망은 수동이 아닌 기쁨의 감정에서만 (제3부 정리 59에 의해), 즉 지나칠 수가 없는 기쁨에서만 (정리 16에 의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에서는 생길 수 없으므로, 이 욕망은 (정리 8에 의해) 악의 인식이 아니라 선의 인식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이성의 지도에 따라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선을 욕구하고, 또 그러한 한에 있어서만 악을 피한다. Q.E.D

주석: 이 계는 병자와 건강한 사람의 예에 의하여 설명된다. 병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싫어하는 것을 먹는다. 반면에 건강한 사람은 음식을 즐기며, 죽음을 두려워하여 직접적으로 그것을 피하려 애쓰는 경우보다 삶을 보다 잘 즐긴다. 마찬가지로 미움이나 분노 때문이 아니라 단지 공공의 안녕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죄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재판관은 오직 이성에 의해서만 인도된다.

2.
옛날에는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와 사람을 물어 죽이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면 그 자식은 원수를 갚을 작정으로 호랑이를 잡겠다고 나설 겁니다. 그렇게 분노와 적개심에 차서 호랑이를 죽인다면 그것은 살생이고 그때의 마음은 중생심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다시는 나 같은 불행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살생의 죄업을 받겠다는 마음으로 호랑이를 죽인다면 그것은 중생심이 아닙니다. 그러한 행위는 한풀이도 복수도 세상을 외면하는 것도 아닌, 보살이 세상을 정토로 만들어가는 마음입니다.
만약 호랑이가 마을의 다른 사람을 물어 죽였다면 안타까운 마음은 들겠지만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겠지요. 내심으로는 내 일이 아닌 게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 겁니다. 하지만 호랑이가 내 부모를 죽였기 때문에 나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고 남의 불행을 막으려는 보살행까지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법륜스님, 금강경 강의 273)

3.
명백하게 실재들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는 것은 언제일까요? 심지어 괄호 친 객관성을 믿는 사람들에게조차 말입니다. 어떤 조건 하에서 근본적인 존중이 끝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존중은 결코 끝나는 법이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 우리가 위험하다고 그래서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분명 행동을 할 것이고 그들에 맞설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의 행위들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정당화가 결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의 행위들을 위한 지반들을 제공하기 위해 어떤 초월적 실재나 진리에 호소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책임을 충분히 자각하면서 행동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를 좋아하지도 원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활동적이 되며 책임 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거부하거나 상호존중 속에서 분리를 수행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존중의 태도가 우리로 하여금 언젠가-책임에 대한 완전한 자각을 가지고-총을 사용하자고 결정하도록해도 너무나 당연한 건가요?

물론입니다. 사람을은 <나의 투쟁>을 읽고, 이 책에서 히틀러가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매우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 뒤에 그들은 자신들이 거기에 기술된 세계와 자신들 앞에 제시된 강령을 정말로 원하는지 결정해야만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실재들에 대한 존중만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주의 깊은 행위들을 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적들에 관용을 배푸는 사람들은 그들을 똑바로 보지 못합니다. 그들 자신의 믿음이 그들의 지각을 흐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들을 존중하게 되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들에게 맞서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마뚜라나 <있음에서 함으로>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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