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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츠의 주장에는 (관찰자가 아니라) 환경에 우위가 부여되어 있습니다. 인과관계로 보자면 환경은 경험의 원인이고 그 결과가 점진적 인식의 확장을 통해서 실제적인 세계와 같아지는 적응인 것이지요. 당신은 이런 작용관계를 뒤집고 있고요. 그래서 유기체의 경험이 우위를 점하고 관찰이 원인이며 표상의 총체인 세계의 성립은 그 결과인 것이지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어쩌면 제가 썻던 아주 짧은 연극한토막이 설명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 연극은 관객이 있는 극장에서 행해집니다. 갑자기 멋진 붉은 막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무대로의 시야가 열리지요. 사람들은 한 그루의 나무, 한 여인과 한 남자를 보게 됩니다. 그 남자는 나무를 가리키면서 큰 목소리로 아주 연극적으로 말합니다. "저기 나무가 서 있군." 그러면 여인이 말합니다. "거기에 나무가 있다는 것을 넌 어떻게 아니?" 남자는 말합니다. "내가 그것을 보니까!" 이에 여인은 살짝 웃으며 말합니다. "아~" 그리고는 막이 내려집니다. 인식의 문제와 외적 세계의 역할을 둘러싼 오래된 논의, 얼마 전까지 그리고 로렌츠에게까지 지속되어 온 천년 이상된 논의를 밝히는데 이 작은 연극이 적합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연극에서) 우리가 그 남자에 동의해야하는지 그 여자에게 동의해야 하는지에 관한 결정할 수 없는 물음이 우리를 태고이래로 지배해 왔습니다. 그 남자는 관찰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나무와 환경을 주장하고 있고 그 여자는 반대로 그 남자가 그 나무를 보기 때문에 그 나무에 대해서 알 뿐이라는 점을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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