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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정리한 바 있던 해석학적 원리는 '화자가 아니라 청자가 (화자에 의해 행해진) 진술의 의미를 규정한다'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화자가 어떤 문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고 청자는 화자가 말한 것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아주 근본적인 잘못입니다. 저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소리를 해석하여 그 소리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청자입니다." (진리는 거짓말쟁이의 발명품이다 158)
2.
가령 내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소리를 캄보디아인은 알아듣지 못한다. 반대로 나 역시 캄보디아 사람이 만들어내는 뭐라뭐라하는 기묘한 소리를 캄보디아말을 모르니 알아듣지 못한다. 캄보디아사람이 나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정보는 전달되지 않는다.
내가 캄보디아사람에게 뭐라뭐라말하는 기묘한 소리는 신호에 불과하다. 이 소리는 나에게는 정보이나 그이에게는 그냥 있는그대로일 뿐이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3.
그런데, 내가 캄보디아말을 안다고해도 또 캄보디아인이 한국말을 안다고해도 정보가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사람한테 분명한 한국말로 전해도 못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정말로 "저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기묘한 소리를 해석하여 그 소리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청자이다."
내가 만드는 것은 신호에 불과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호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다만 초대할 뿐이다.
왜냐하면 정보는 전달되지 않는다.
4.
본다는 것이 내가 보는 것을 보는 것이라는 통찰은
듣는다는 것에도, 냄새맡는다는 것, 느낀다는 것에도 마찬가지다. 듣는다는 것은 내가 듣는 것을 듣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을 듣지 못한다.
5.
내가 아는 정보를 나는 전달할 수 없다.
내가 만들어내는 기묘한 소리는 신호에 불과하다.
그 소리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청자다.
6.
만약 색신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 금강경 사구게
7.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는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문제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립니다. (화가의 잔인한 손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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