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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잠수함 안에서 한 번도 밖으로 나온 적 없이 평생을 살면서 잠수함을 잘 조종하게 되었다고 치자. 우리가 바닷가에 서 있는데 이 잠수함이 접근해 물 위로 사뿐히 떠올랐다. 이것을 지켜본 우리는 조종사에게 무전기로 "축하합니다. 암초를 피해 수면 위로 멋지게 떠오르셨군요. 잠수함을 완벽하게 조종하셨습니다."하고 말한다. 그런데 잠수함 안에 있는 조종사는 어안이 벙벙하다. "도대체 '암초'가 뭐고 '떠오른다'는 게 뭐지? 나는 그저 지레를 움직이고 단추를 눌러 매순간 계기가 가리키는 것들 사이에 일정한 관계가 생기도록 했을 뿐인데. 언제나처럼 이미 정해진 순서대로 말이야.
난 '조종'이란 것을 한 적이 없어. 게다가 뭘 보고 '잠수함'이라고 떠들어대는 거야?" 잠수함 안의 조종사에게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계기가 가리키는 것들과 그것들의 변화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특정 관계를 산출하는 방법 뿐이다. 잠수함과 주위 환경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우리에게만 잠수함의 '행동'이 존재한다. 그리고 오로지 우리에게만 행동은 그때그때의 결과에 따라 적절하거나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논리적 접근방법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환경 안에서 이루어지는 잠수함의 이동과 움직임을 잠수함 자체의 작업방식 및 내적 역동성과 혼동하지 말아야한다. 바깥세계를 모르는 조종사가 탄 잠수함의 역동적 상태변화란 결코 바깥의 관찰자가 보듯이 세계에 대한 표상들을 가지고 작업한 결과가 아니다. 이 역동성은 '바닷가', '암초', '수면' 따위를 포함하지 않는다. 오직 계기가 가리키는 것들 사이의 상관관계가 어떤 범위 안에서 존재할 뿐이다. 바닷가, 암초, 수면 등은 오직 바깥의 관찰자에게 타당한 실체들이다. 잠수함에게 또는 잠수함의 구성요소로 작업하는 조종사에게 이런 것들은 타당하지 않다.
이 비유에서 잠수함에게 타당한 것은 모든 생명체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눈이 돌아간 개구리와 늑대소녀에게도 적용되고 우리 각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앎의 나무 157)
2.
우리의 접근법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는 더 이상, 외부 세계의 재현물들을 계산하고 외부에서 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그래서 유기체의 적절한 행위와 적합한 반응들로 귀결되는 체계로서 신경체계를 서술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신경체계는 이제 그 자신의 독특한 작동 방식을 갖춘 '구조적으로 결정된'체계로 보입니다. 이 체계 안의 어떠한 변화도 단지 유발될 뿐이지, 전적으로 외부 세계의 특질들이나 성질들에 의해 결정되거나 확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어지는 그 자신의 변형들 만을 계산합니다. 이 통찰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신경체계 내부에서 일어나는 작동들과 그것들 외부에서 발생하는 모든 과정들 사이에 엄밀한 개념적 구분을 두어야 합니다. 또한 아주 확실히 해 두어야 하는 것은, 신경체계에는 내부도 외부도 없고 단지 상호작용하는 요소들의 폐쇄적인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상호관계들이 영구적으로 약동할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내부와 외부는 관찰자에게 존재하는 것이지 체계 그 자체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98)
3.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금강경>
4.
조종사의 관점과 관찰자의 관점, 그 어느 한 관점이 옳다해도 틀리다. 조종사의 관점에 머물면 (불교식으로 말하면) "공의 세계에 집착한 것이고", 관찰자의 관점에 머물면 "이름과 형태에 집착한 것이다."
중도, 흔들리는 양극단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다.
환상처럼보기 혹은 이중보기.
T.
1.
내가 보기에 예쁘다. 오직 모를 뿐.
예쁘다고 하나 예쁜게 아니므로 그 이름함이 예쁘다이다.
2.
체계는 오직 변이만이 있을 뿐인데, 큰 완전성에서 작은 완전성으로, 작은 완전성에서 큰완전성으로 이행한다. 생겨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고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고 깨끗해지는 것도 없고 더러워지는 것도 없다. 그 어떤 것도 침투할 수 없다. 안도 없고 밖도 없다.
#폐쇄적신경체계 #오직모를뿐의이해 #앎의나무 #이중보기 #환상처럼보기 #중도 #내가보는것을환상처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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