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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다면 당신은 이 체험을 치료법적 간섭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이 나쁜 어린 소년이 있었는데, 실수로 수영장에 빠졌으나 어떻게 해서 스스로를 구했다.' 그리고 당신은 자신의 공포나 분노에 따라 반응하지 않고 그 아이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당신의 자각과 긍정적인 평가에 따라 반응할 것입니다. (함으로 196)
만일 우리가 사람들이 공포, 증오 또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이 의미하는 바를 주의해 보면, 우리는 그들이 항상 어떤 상관적인 행위의 특별한 영역을 함시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 순간에 하고 있는 것을 하는, 또는 그들이 할 것을 하고 싶어 할 영역 말입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구분할 때 구분하는 것은 상관적인 행위들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상이한 감정들을 구분하면서 우리는 상관적 행위들의 상이한 부류들을 구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다른 사람이 특별한 감정을 드러낸다고 말하거나 또는 우리가 누구라고 말할 때,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특별한 상관적 영역 속에서 그/녀를 본다는 것입니다. 감정들은 상관적인 원리, 즉 어느 순간이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그것에 기초해서] 우리가 하는 상관적인 원리를 구성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우리는 특별한 상관적 영역 속에서, 다시 말해 우리가 하는 것에 행위로서의 그 특별한 상관적 특징을 부여해 주는 특별한 감정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함으로 190)
필요한 것은 감정들의 분석이 아니라, 각각의 특수한 감정을 특수한 상관적 영역에서의 작동으로 구성해주는 상관적 동학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각이나 이해를 속박하고 여과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반대로 우리의 지각적 개방성을 늘려줌으로써 우리를 편견들과 야망들, 또는 기대들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유일한 감정이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내가 주장하는 곳이 바로 이 관계에서입니다.
사랑은 언제 존재할까요? 우리는 다른 존재 또는 그 자신이 (자기 자신과 공존하면서 정당한 타자로 나타나는)상관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그 사람 안에서 사랑의 행위를 본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나는 우리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의 관념으로써 암시하는 것은 우리가 당연한 일로 수행해 내는 그러한 상관적 행위들의 영역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 영역을 통해, 우리 자신일 수 있었을 다른 존재가 우리와 공존하는 정당한 타자로서 출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랑의 상관적 영역 속에서 타자는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도록 요청받지도 요구받지도 않습니다. 설령 의견이 안 맞는다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출현이 편견들이나 요구들에 의해 부정되지도 가려지지도 않은 채 보입니다. 따라서 그가 받아들여지는냐 또는 부정되는냐는 '보기'의 행동이지 맹목의 행동이 아닙니다. 사랑은 다른 누군가에게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의도된 행동이 아닙니다. 사랑은 단방향적입니다. 그리고 보답을 바라지 않고 타자의 정당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일어납니다. (있음에서 함으로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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