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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셀 레리스는 당신의 작품이 리얼리즘의 한 형태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날 리얼리즘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리얼리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초현실주의 이래로, 실상 지그문트 프로이트 이래로 어느 정도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리얼리즘이 어떻게 무의식에 기댈 수 있는지를 보다 의식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예가 1930년 무렵의 피카소의 특정 작품들이라고 생각합니ㅏㄷ. 1928년 디나르에서 해변의 형상을 그린 작은 그림들 말입니다. 그 작품들에서 피카소는 다른 모든 것들을 흡수한 것과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 역시 받아들였는데, 이미지는 전적으로 비삽화적이지만 형상에 있어서 대단히 실제적입니다. 예를 들어 욕실의 문을 여는 특이한 곡선의 이미지는 욕실의 문을 여는 인물의 삽화보다 훨씬 더 실제적입니다.

당신은 '더 사실주의적realist' 혹은 '더 사실적realistic'이라는 말 대신 "더 실재적real"이라고 말하는 군요.

'실제적'이라는 단어가 리얼리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단어는 형태들이 당신에게 보다 큰 박진감, 다시 말해 양감과 실재감을 보다 풍부하게 전해 준다는 점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더 실재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문의 열쇠를 돌리는 사람의 행위가 삽화적인 경우보다 한층 실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의미입니다.

보다 사실적으로 행위가 이뤄어졌다는 뜻입니까?

당신이 '사실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적'이라는 단어가 사실적이라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내가 "더 실제적"이라고 말할 때 그건 보다 더 사실을 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315)

2.
피카소의 이미지가 지닌 실재감은 열쇠와 열쇠 구멍의 정확한 표현과 인물의 허구적인 특성이 빚어내는 대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대조가 힘 있는 몸짓을 돋보이게 만드는 건가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것이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리는 행위의 외면적인 실재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실재도 주관적인 함의를 지니는데, 이 주관적인 함의가 자물쇠 안에 삽입된 열쇠에 날카로움을 제공해 줍니다. 나는 리얼리즘을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고쳐져야 합니다. 고흐는 한 편지에서 실재의 변형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그 변형은 정확한 진실보다 더 진실한 거짓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화가가 포착하고자 하는 실재의 강렬함을 다시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미술에서 실재는 대단히 인위적인 것이며 재창조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단순히 대상에 대한 삽화에 지나지 않을 테고, 대단히 간접적인 것이 될 겁니다. (315)

3.
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런 작품은 고유의 힘을 갖고 있습니다. 자체의 리얼리즘을 재창조했기 때문이죠. 빈센트 반 고흐는 나의 위대한 영웅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사물의 실재에 대해 거의 정확하면서도 놀라운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프로방스에 있었을 때 그가 풍경화를 그렸던 크로 지역을 지나면서 이 점을 아주 분명하게 확인했습니다. 그 황량한 지역에석 그가 물감을 채색한 방식을 통해 작품에 그토롤 놀라운 생생함, 곧 단조롭고 황페한 땅이라는 크로 지역의 실재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보는 사람은 그 생생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초상화 작업에서 문제는 대상 인무르이 백박까지도 전달할 수 있는 기법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상하가 매력적이면서 어려운 이유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초상화를 제작하고 싶을 때 가장 전통적인 화가들을 찾아갑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들은 자신을 진실하게 포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일종의 컬러 사진과 같은 그림을 더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초상화의 모델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고, 포착해야 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부터 발산되는 무엇입니다. 나는 영혼과 같은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결코 영혼을 믿지 않아요. 하지만 사람은 그가 누구든 항상 무언가를 발산합니다. 다만 그 발산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강한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발산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사람이 내뿜는 일종의 에너지라는 표현은 어떻습니까?

에너지가 낫겠군요. 외관이 있고 그 안에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포착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물론 한 사람의 외관은 그 사람의 에너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지인을 보았을 때, 그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몸짓만으로 특정 인물의 초상화를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지 여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초상화를 그릴 때 얼굴을 기록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얼굴과 함께 그 사람으로부터 발산되는 에너지를 포착해야 합니다.

그렇담녀 당신의 작품 속 형태들을 설명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 외관과 에너지를 함께 포착하려는 시도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작품 속 형태들을 설명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 외관과 에너지를 함께 포착하려는 시도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기를 기록하고자 한다면 화가는 외관을 표현하는 기계적인 수단과 더불어 한층 더 강렬하고 감축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상화는 이른바 세련된 단순함이 주는 강렬함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키클라데스 시대의 조각 같은 진부한 단순함이 아닙니다. 실재를 드러낼 수 있도록 단순화한 이집트 조각과 같은 특성을 의미합니다. 강렬함을 띠도록 간결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저 단순화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은 어떤 리듬을 부여하죠. 혹자는 그것을 왜곡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본 것을 특유의 방식으로 일그러뜨립니다. 당신은 대상을 일그러뜨리는 특정한 방식은 생기에 대한 특정한 태도를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것이 오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형태를 다루는 방식은 심미적인 이유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보다 예리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이미지를 전달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그러뜨리는 것입니다.
(319~320)

4.
왜 드가처럼 단순히 생략하기보다는 당신과 같은 현대 미술가들처럼 자유롭게 일그러뜨려야 하는 겁니까?

드가의 시대에는 사진이 지금처럼 크게 발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드가의 가장 뛰어난 작품은 파스텔화이며, 그가 파스텔화에서 늘 이미지를 관통하는 줄무늬르 넣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선은 보기에 따라서는 이미지의 실재를 강하하면서 다각화합니다. 나는 늘 드가에게서 흥미로운 점은 몸을 관통하는 그와 같은 선을 그린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밍서 그는 몸에 셔터 문을 달았다고, 이미지에 셔터 문을 달았다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런 다음에 그 선 사이로 엄청난 양의 안료를 넣었습니다. 형태에 셔터 문을 달고 살 사이로 안료를 집어넣으므로써 그는 강렬함을 만들어 냈습니다. 영화를 비롯하여 다양한 형식의 기록의 기술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화가는 점점 더 창의적이 되어야 합니다. 리얼리즘을 깨끗이 씻어서 신경계로 되돌려 보내야 합니다. 그림에서 자연스러운 리얼리즘과 같은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닏. 왜 종종 또는 거의 항상 우연적인 이미지가 가장 실제적인지 사람들은 과연 알고 있을까요? 아마도 우연적인 이미지가 의식적인 뇌에 의해 변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의식에 의해 변조된 이미지보다 한층 더 적나라하게 그리고 보다 실제적인 의미에서 전달되는 것이 아닐꺄요?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 이미지는 어린이, 특히 아주 어린 아이들의 미술과 매우 흡사합니다. 일고여덟 살 또는 그보다 어린 나이를 지나 아이들이 환경의 영향을 받는 시기가 되면 아이들의 미술이 자발성과 활기를 모두 잃고 매우 따분해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미술은 가장 좋은 작품이라 해도 결코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321)

5.
왜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복제하고 볼 수 있는 여러 수단들 때문에 예술의 포화 상태에 있습니다. 포화 상태가 극심해서 사람들은 오로지 새로운 이미지와 실재가 만들어질 수 있는 새로운 방법만을 열망합니다. 결국 사람은 새로운 창안을 원하고 과거의 지속적인 복제를 원치 않습니다. 그것이 그리스 미술이 몰락한 이유였고, 이집트 미술이 몰락한 이유였습니다. 게속해서 자기 자신을 복제했기 때문이죠. 르네상스나 19세기 또는 그 밖의 다른 시대의 것들을 계속 복제할 수 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리얼리즘을 원합니다. 그것은 삽화적인 리얼리즘이 아니라 실재를 전적으로 임의적인 것 안에 가두는 새로운 방식의 진정한 창안을 통해서 생겨나는 리얼리즘을 의미합니다.

전적으로 임의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전적으로 인위적인 것입니까?

임의적인 것이라고 말했지만 인위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군요.

임위적인 것도 참일 수 있지만 작품이 지닌 힘의 일부분, 핵심적인 부분은 예상 밖이지만 필연적으로 보이는 것이락 ㅗ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동의합니까?

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그것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ㄷ너 사람이 '큰 유리'를 제작한 뒤샹입니다. 그 작품은 추상과 리얼리즘의 문제를 극단으로까지 몰고 갑니다.

피카소보다도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325)


6.
결국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아니라, 여러 다른 실재들에 대한 언급의 병치, 그리고 실재와 작품의 인위적인 구조 사이의 긴장, 이 양자가 빚어내는 충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인위적인 구조 안에서의 주제의 실재가 포착될 것이고 덫이 주제를 둘러싸서 실재만을 남겨 둘 것입니다. 주제가 아무리 빈약하다 해도 나는 언제나 주제로부터 작업을 시작하고, 출발점인 그 주제의 실재를 가둘 수 있는 인위적인 구조를 만듭니다.

주제는 일종의 미끼인 셈인가요?

네, 주제는 미끼입니다.

남겨진 실재, 그 잔여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당신이 시작한 출발점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그 남겨진 실재는 출발점과 반드시 관계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남아 있게 될 주제에 상응하는 리얼리즘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어딘가에서부터 시작을 하긴 해야 합니다. 주제로부터 시작하게 되지만 어쨌든 작업이 진행되면서는 주제는 점차 시들고 실재라고 부를 수 있는 잔여물이 남습니다. 아마도 그 잔여물은 출발점과 의미하게나마 관계가 있겠지만 거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328)

7.
나는 사람들이 마티스의 작품에서 받는 강렬한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늘 그의 작품이 너무 서정적이고 장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후기의 종이 오리기 작업은 다른 작품보다 그 경향이 덜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티스의 작품에는 리얼리즘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것이 내가 늘 피카소의 작품에 훨씬 더 많은 흥미를 느꼈던 이유입니다. 마티스의 작품에는 피카소의 작품이 갖고 있는 사실의 잔혹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는 피카소의 창의력을 가져 본 적이 없으며 사실을 서정성으로 전환해 버립니다. 그는 피카소와 같은 사실의 잔혹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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