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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프카)로서는 내 불행의 시작이 내적으로 필연적이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 그것은 어떤 필연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적 필연성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마치 파리처럼 날면서 닥쳐왔고 그런 만큼 또한 쉽게 쫓아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 바로 여기에 본질적인 것이 있다.
(들뢰즈가타리, <카프카 소수문학을 위하여> p33)

"외부적 억압,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었지만, 내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파리처럼 날면서 닥쳐왔고 그런 만큼 또한 쉽게 쫓아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본질적인 것이 있다.

"나는 나의 불행의 시초가 내적으로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나의 불행에는 어떤 필연이 개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적인 필연성은 아니었다. 마치 파리떼가 달려들 듯이 나를 덮친 불행들, 나는 그것들을 내게 쉽게 온 것만큼이나 쉽게 몰아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T.

도일체고액
불행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외부적 억압, 그것은 필연적인 것이었지만, 내적으로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괴로움은 마치 파리처럼 날면서 닥쳐왔고 그런 만큼 또한 쉽게 쫓아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여기에 본질적인 것이 있다.

2.
불행은 없다. 또 불행이 없어지는 것도 없다.
불행은 내적 필연성이 아니라는 것, 바로 여기에 본질적인 것이 있다. 카프카는 이를 이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한다. "그것은 나에게 마치 파리처럼 날면서 닥쳐왔고 그런 만큼 또한 쉽게 쫓아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3.
그것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이어지는 (스피노자식으로 말하면, 작은 완전성에서 큰 완전성으로 이어질 때는 기쁨을, 큰 완전성에서 작은 완전성으로 이행할 때는 슬픔을), 그 자신들의 변형들만을 계산합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큰 완전성에서 작은 완전성으로의 이행인데 이 변화는, 그러니까 "체계 안의 어떠한 변화도 단지 유발될 뿐이지, 전적으로 외부 세계의 특질들이나 성질들에 의해 결정되거나 확정되지 않습니다." 화가 난다는 것은 결국 내가 결정하는 것이지, 결코 외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내재성의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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